본문
10월 주제 : 깊어가는 묵상과 기도의 확신 속에 불붙는 마음으로 나아가십니다!
2019-10-06
10월 주제 : 깊어가는 묵상과 기도의 확신 속에 불붙는 마음으로 나아가십니다!
『이 은혜는 곧 나로 이방인을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의 일군이 되어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 직무를 하게 하사...』(롬 15:16)
* 10월 7일(月) 무디 가정 박성구 형제님이 논산 훈련소로 입소하여 육군 의무병으로 입대합니다.
주님의 손안에서 뜻있는 시간 보내므로 뚜렷한 주님의 사람으로 굳게 서도록 기도 부탁드립니다.
* 12일(土)에는 두 가정이 군부대 섬김 나아가십니다. 온 장병들이 복음을 들을 때 믿고 주님의 나라로 모두 속해 올 수 있도록, 함께 나아가는 마음으로 기도해 주셔요.
- 4 가정 : 원주 백호상승교회
- 17가정 : 인제 8020부대 승리광현교회
주님의 손안에서 뜻있는 시간 보내므로 뚜렷한 주님의 사람으로 굳게 서도록 기도 부탁드립니다.
* 12일(土)에는 두 가정이 군부대 섬김 나아가십니다. 온 장병들이 복음을 들을 때 믿고 주님의 나라로 모두 속해 올 수 있도록, 함께 나아가는 마음으로 기도해 주셔요.
- 4 가정 : 원주 백호상승교회
- 17가정 : 인제 8020부대 승리광현교회
추 구 (그의 나라)
우리 모두가 정말 익히 잘 생각하여 온
밤중에 깨어서 등불 켜고 서 있는 종의 말씀입니다.
이것이 바로 그의 나라에 대해서 잠들지 않고,
늘 깨어 있겠다는 것입니다.
이 종에게는 보이는 세상을 오히려 어두움으로
그리고 그 가운데서 새로운 등불을 켜고
나머지 그 모두에 대해서 문 닫은 채,
오직 그의 주님께만 대하여
귀 기울이면서 서 있는 것입니다.
보이는 이 세상을 향하여 낮이라 하고,
보이는 이 세상을 향하여만 살아간다면
천국은 그에게 없어져 보일 것입니다.
그 모두를 밤으로, 그리고 문 닫고,
그리고 주님만을 위한 등불을 켜고,
오직 주님만을 기다리고 또 기다리는 그에게
그의 나라의 역사하심이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진정 이 사람이
이 세상을 모두 등 뒤로 돌리고,
진정 그의 나라만을
끊임없이 구하는 자가 아닐까요?
오늘도 그리고 혹 내일도, 혹 모레도...
그래서 마침내 우리의 주님이 오실 그때까지
이 사람의 이 세상에 대한 자세는
늘 그러하기만 할 것이며
우리 주님께 대한 자세도
오직 그러하기만 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 사람은
그의 추구한 그대로 주님의 나라에서
칭찬과 존귀를 듣고야 말 것입니다.
- 「새벽 날개」 中에서 -
밤중에 깨어서 등불 켜고 서 있는 종의 말씀입니다.
이것이 바로 그의 나라에 대해서 잠들지 않고,
늘 깨어 있겠다는 것입니다.
이 종에게는 보이는 세상을 오히려 어두움으로
그리고 그 가운데서 새로운 등불을 켜고
나머지 그 모두에 대해서 문 닫은 채,
오직 그의 주님께만 대하여
귀 기울이면서 서 있는 것입니다.
보이는 이 세상을 향하여 낮이라 하고,
보이는 이 세상을 향하여만 살아간다면
천국은 그에게 없어져 보일 것입니다.
그 모두를 밤으로, 그리고 문 닫고,
그리고 주님만을 위한 등불을 켜고,
오직 주님만을 기다리고 또 기다리는 그에게
그의 나라의 역사하심이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진정 이 사람이
이 세상을 모두 등 뒤로 돌리고,
진정 그의 나라만을
끊임없이 구하는 자가 아닐까요?
오늘도 그리고 혹 내일도, 혹 모레도...
그래서 마침내 우리의 주님이 오실 그때까지
이 사람의 이 세상에 대한 자세는
늘 그러하기만 할 것이며
우리 주님께 대한 자세도
오직 그러하기만 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 사람은
그의 추구한 그대로 주님의 나라에서
칭찬과 존귀를 듣고야 말 것입니다.
- 「새벽 날개」 中에서 -
나의 힘이 되시는 주님
박 윤 자 집사님
나를 위해, 나의 죄로 인하여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통 나 하나만을
자신은 아무것도 아닌 듯,
십자가로 못 박혀 돌아가시고
나를 새 사람으로 살게 하시고자
부활하신 나의 주님, 나의 하나님이십니다.
나의 기쁨이 되신 주님!
이 가을은 유난히 더욱 주님이 그립습니다.
주님의 날개 아래 포근히 눕고 싶습니다.
“내 안에 거하라” 하신 말씀에
이미 저는 주님 안에 자리 잡았습니다.
사랑하는 주님!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세 번 아닌 열 번도 저에게 물어보십시오.
제가 주님만 사랑하옵니다.
나의 영원하신 주님!
주님은 나의 영혼의 주인이십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통 나 하나만을
자신은 아무것도 아닌 듯,
십자가로 못 박혀 돌아가시고
나를 새 사람으로 살게 하시고자
부활하신 나의 주님, 나의 하나님이십니다.
나의 기쁨이 되신 주님!
이 가을은 유난히 더욱 주님이 그립습니다.
주님의 날개 아래 포근히 눕고 싶습니다.
“내 안에 거하라” 하신 말씀에
이미 저는 주님 안에 자리 잡았습니다.
사랑하는 주님!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세 번 아닌 열 번도 저에게 물어보십시오.
제가 주님만 사랑하옵니다.
나의 영원하신 주님!
주님은 나의 영혼의 주인이십니다.
오 늘
배 현 화 자매님
예수님 발에 남김없이
향유를 쏟아부은 마리아!
내일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두렵지 않았습니다.
오늘 나의 예수님뿐이었으니까요.
주님! 나의 오늘도 그렇습니다.
가진 것 없는 내일이 두렵지 않습니다.
허우적거리며 살아가지 않도록 붙드시는
내 주님 한 분뿐입니다.
오늘을 내 온 마음 다하여
남김없이 살아드리고 싶습니다.
향유를 쏟아부은 마리아!
내일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두렵지 않았습니다.
오늘 나의 예수님뿐이었으니까요.
주님! 나의 오늘도 그렇습니다.
가진 것 없는 내일이 두렵지 않습니다.
허우적거리며 살아가지 않도록 붙드시는
내 주님 한 분뿐입니다.
오늘을 내 온 마음 다하여
남김없이 살아드리고 싶습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이 상 순 집사님
인도부터 구스 광활한 127도(都)에
머물러 있는 저들이 아닌,
그 땅에 ‘포로 된 적은 무리’
곧 내 백성이라 일컬음 주시길 기뻐하시는 유대인!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고
온 땅은 악한 자안에 처해 있다 하심에....
피난처 되신 내 주님께 속한 나로
하나님과의 언약 백성 된 이면적 유대인!
이 영광된 부르심 따라
좁은 길 걷고자 전투하듯 달려가는 길에서
동행 속에 나의 주와 그리스도 되어주심을
찬양케 하심에 더욱 감사가 됩니다.
주를 신뢰함이 얼마나 담대하게 하는지요.
주를 인정함이 얼마나 힘 있게 하는지요.
주를 기대함이 얼마나 감사하게 하는지요.
주를 바람이 얼마나 영광 있게 하는지요.
주를 찾고 구함이 얼마나 소망 있게 하는지요.
주를 사랑함이 얼마나 사모하게 하는지요.
주를 그리워함이 얼마나 간절하게 하는지요.
이 가을에!
“죽으면 죽으리라!”는 에스더의 소명을 갖고
깨어있는 주님의 군사로 서서
내 주님 기쁘시게 해 드리는 주님의 유다로
새롭게 일으켜 주심에 더욱 감사한답니다.
머물러 있는 저들이 아닌,
그 땅에 ‘포로 된 적은 무리’
곧 내 백성이라 일컬음 주시길 기뻐하시는 유대인!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고
온 땅은 악한 자안에 처해 있다 하심에....
피난처 되신 내 주님께 속한 나로
하나님과의 언약 백성 된 이면적 유대인!
이 영광된 부르심 따라
좁은 길 걷고자 전투하듯 달려가는 길에서
동행 속에 나의 주와 그리스도 되어주심을
찬양케 하심에 더욱 감사가 됩니다.
주를 신뢰함이 얼마나 담대하게 하는지요.
주를 인정함이 얼마나 힘 있게 하는지요.
주를 기대함이 얼마나 감사하게 하는지요.
주를 바람이 얼마나 영광 있게 하는지요.
주를 찾고 구함이 얼마나 소망 있게 하는지요.
주를 사랑함이 얼마나 사모하게 하는지요.
주를 그리워함이 얼마나 간절하게 하는지요.
이 가을에!
“죽으면 죽으리라!”는 에스더의 소명을 갖고
깨어있는 주님의 군사로 서서
내 주님 기쁘시게 해 드리는 주님의 유다로
새롭게 일으켜 주심에 더욱 감사한답니다.
벧세메스로 가던 소
한 남 경 집사님
하나님을 멸시했던 이스라엘은
결국 언약궤를 블레셋에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그런 이스라엘이라면 차라리 블레셋과 다를 바가 무엇이냐?'라고 하시는 것만 같습니다.
이 언약궤를 다시 이스라엘로 돌아오게 한 것은 힘세고 싸움에 능한 장수도 아니었고
유능한 협상가도 아니었습니다.
한낱 우직해 보이는 암소 두 마리가
언약궤를 이스라엘로 도로 끌고 온 것입니다.
언약궤를 메고 벧세메스로 향하던 소들은
울면서도 자기를 부인하였고,
가는 길에서 이곳저곳 기웃거리지도 않았으며,
벧세메스 길로 곧장 나아갔습니다.
마침내 도착해서는 그 엄청난 역사의 흔적인
메고 온 수레를 불태워 없앴을 뿐 아니라,
자신들마저 불태워 번제로 드리는
겸손을 보여준 것 같습니다.
“갈 때에 울고 가던 벧세메스로 가던 소보다
못하다면 당신도 오늘 정과 욕심에 매여서...
주님 모신 영광의 길을 참으로 걷는 자는 아 닐 것입니다.”라는 목사님의 글을 대하면서
'그래, 하루하루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벧세메스로 가던 소처럼만 살자!!'라고
거듭 다짐해 보았습니다.
결국 언약궤를 블레셋에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그런 이스라엘이라면 차라리 블레셋과 다를 바가 무엇이냐?'라고 하시는 것만 같습니다.
이 언약궤를 다시 이스라엘로 돌아오게 한 것은 힘세고 싸움에 능한 장수도 아니었고
유능한 협상가도 아니었습니다.
한낱 우직해 보이는 암소 두 마리가
언약궤를 이스라엘로 도로 끌고 온 것입니다.
언약궤를 메고 벧세메스로 향하던 소들은
울면서도 자기를 부인하였고,
가는 길에서 이곳저곳 기웃거리지도 않았으며,
벧세메스 길로 곧장 나아갔습니다.
마침내 도착해서는 그 엄청난 역사의 흔적인
메고 온 수레를 불태워 없앴을 뿐 아니라,
자신들마저 불태워 번제로 드리는
겸손을 보여준 것 같습니다.
“갈 때에 울고 가던 벧세메스로 가던 소보다
못하다면 당신도 오늘 정과 욕심에 매여서...
주님 모신 영광의 길을 참으로 걷는 자는 아 닐 것입니다.”라는 목사님의 글을 대하면서
'그래, 하루하루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벧세메스로 가던 소처럼만 살자!!'라고
거듭 다짐해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