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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주제 : 주님께 속한 조용한 묵상 속에 내 주님 기쁘시게!
2025-08-24
8월 주제 : 주님께 속한 조용한 묵상 속에 내 주님 기쁘시게!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대저 나의 소망이 저로 좇아나는도다』(시 62:5)
내 주님과 사귐
주님께서 부활하신 그 새벽에 주님은 막달라 마리아에게 자신을 숨기시고 “여자여 어찌하여 울며 누구를 찾느냐?”라고 물으셨습니다.
베다니 촌의 마리아는 주님의 음성을 통한 생명의 말씀이 사모 되어 언니의 분주함을 알고도 차마 주님 곁을 떠나지 못할 정도로 주님을 사모하였던 이였습니다. 주님이 그의 마음에 얼마만큼 사랑스러웠는지는 모든 이의 눈앞에서 그나마 다른 이들이(제자들까지도) 좋게 여기지 않음에도 그는 그의 옥합을 깨뜨려 주님의 발에 순전한 나드 향유를 붓고 그의 머리털로 주님의 발을 씻김을 보아도 잘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처럼 사모하였고, 사랑하였고 또 주님을 섬겼고(눅 8:2) 주님을 따라 예루살렘으로, 마침내 십자가 곁에 서 있기까지 하였으며 그 주님의 시체를 따라서 무덤까지 가서 그의 주님을 둔 곳을 바라보던 막달라 마리아에게 주님은 전혀 새롭게 물으신 것입니다. “누구를 찾느냐?”라고….
우리는 여기서 주님의 원하시는 진정한 사귐이 어떠한 것인가를 발견합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주님과 며칠 전까지 동행하던 요한과 베드로를 만날 수 있었지만, 그들로 족할 수는 없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무덤에서 천사를 만났지만, 그러나 그가 진정 찾고자 하는 것은 천사도 아니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의 중심에 간절히 찾고자 함은 바로 그 주님 자신이었습니다.
주님은 막달라 마리아의 과거의 마음을 묻지 않으셨습니다. 얼마나 과거에 주님을 사모하며 사랑하고 따랐는가가 아니었습니다. 지금의 찾는 그 마음! 지금 주님을 사모하는 그 마음! 지금 주님을 찾아 애태워 우는 그 눈물! 이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가 과거에 얼마나 주님을 사랑하였는가가 오늘의 주님과의 만남의 열쇠는 될 수 없었습니다. 지금 주님을 사모하여 찾는 그 마음만이 주님과의 만남을 가능케 하였습니다. 주님과 우리 각인의 사귐은 언제나 오늘의 사귐이어야 하며 지금의 사귐이어야 합니다. 오늘 처음으로 주님을 만나듯 전심으로 사모하고 구하는 이만이 주님과의 살아 있는 만남의 사귐을 가질 수 있습니다.
… 중략 …
형제여!
지금 가까이 계신 주님과 늘 ‘첫사랑’ 속에서 살으십시다. 그의 사랑의 얼굴을 바라보는 우리의 마음을 이 순간이라도 다른 그 누구 그 무엇에 빼앗김 없이 살으십시다. 이때 우리는 “겉 사람은 후패 하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롭도다”(고후 4:16)라는 기쁨의 찬송이 나날이 계속될 것입니다.
“너희는 내 얼굴을 찾으라 하실 때에 내 마음이 주께 말하되 여호와여 내가 주의 얼굴을 찾으리이다 하였나이다”(시 27:8), 오늘 주님만을 사모하여 그의 얼굴빛 가운데 살다가 그날에 주님 계신 그대로 바라보면서 영원히 주님과 함께 살 것입니다.
오늘, 오직 오늘! 주 얼굴 바라보며 그의 얼굴의 빛으로 살으십시다. 오늘 주님만을 사모하여 찾는 그 마음에 주님 얼굴의 사랑의 빛이 비추어지길 기원합니다.
(1975년)
- 「형제에게」 중에서 -
베다니 촌의 마리아는 주님의 음성을 통한 생명의 말씀이 사모 되어 언니의 분주함을 알고도 차마 주님 곁을 떠나지 못할 정도로 주님을 사모하였던 이였습니다. 주님이 그의 마음에 얼마만큼 사랑스러웠는지는 모든 이의 눈앞에서 그나마 다른 이들이(제자들까지도) 좋게 여기지 않음에도 그는 그의 옥합을 깨뜨려 주님의 발에 순전한 나드 향유를 붓고 그의 머리털로 주님의 발을 씻김을 보아도 잘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처럼 사모하였고, 사랑하였고 또 주님을 섬겼고(눅 8:2) 주님을 따라 예루살렘으로, 마침내 십자가 곁에 서 있기까지 하였으며 그 주님의 시체를 따라서 무덤까지 가서 그의 주님을 둔 곳을 바라보던 막달라 마리아에게 주님은 전혀 새롭게 물으신 것입니다. “누구를 찾느냐?”라고….
우리는 여기서 주님의 원하시는 진정한 사귐이 어떠한 것인가를 발견합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주님과 며칠 전까지 동행하던 요한과 베드로를 만날 수 있었지만, 그들로 족할 수는 없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무덤에서 천사를 만났지만, 그러나 그가 진정 찾고자 하는 것은 천사도 아니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의 중심에 간절히 찾고자 함은 바로 그 주님 자신이었습니다.
주님은 막달라 마리아의 과거의 마음을 묻지 않으셨습니다. 얼마나 과거에 주님을 사모하며 사랑하고 따랐는가가 아니었습니다. 지금의 찾는 그 마음! 지금 주님을 사모하는 그 마음! 지금 주님을 찾아 애태워 우는 그 눈물! 이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가 과거에 얼마나 주님을 사랑하였는가가 오늘의 주님과의 만남의 열쇠는 될 수 없었습니다. 지금 주님을 사모하여 찾는 그 마음만이 주님과의 만남을 가능케 하였습니다. 주님과 우리 각인의 사귐은 언제나 오늘의 사귐이어야 하며 지금의 사귐이어야 합니다. 오늘 처음으로 주님을 만나듯 전심으로 사모하고 구하는 이만이 주님과의 살아 있는 만남의 사귐을 가질 수 있습니다.
… 중략 …
형제여!
지금 가까이 계신 주님과 늘 ‘첫사랑’ 속에서 살으십시다. 그의 사랑의 얼굴을 바라보는 우리의 마음을 이 순간이라도 다른 그 누구 그 무엇에 빼앗김 없이 살으십시다. 이때 우리는 “겉 사람은 후패 하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롭도다”(고후 4:16)라는 기쁨의 찬송이 나날이 계속될 것입니다.
“너희는 내 얼굴을 찾으라 하실 때에 내 마음이 주께 말하되 여호와여 내가 주의 얼굴을 찾으리이다 하였나이다”(시 27:8), 오늘 주님만을 사모하여 그의 얼굴빛 가운데 살다가 그날에 주님 계신 그대로 바라보면서 영원히 주님과 함께 살 것입니다.
오늘, 오직 오늘! 주 얼굴 바라보며 그의 얼굴의 빛으로 살으십시다. 오늘 주님만을 사모하여 찾는 그 마음에 주님 얼굴의 사랑의 빛이 비추어지길 기원합니다.
(1975년)
- 「형제에게」 중에서 -
단순한 삶
김 희 정 권사님
새벽을 깨워
주님 앞에 엎드림으로 시작된 오늘 길도
주님이 나의 목자 되어주시며
주의 막대기와 지팡이로 나를 안전하게
보호해 주실 것을 믿고 주님께 소망을 품을 때
나의 영혼이 평안해지며
감사한 마음으로 가득 채워집니다.
이 땅은
나그네와 행인들이 잠시 지나가는 곳이기에
우리가 몸 둘 영원한 곳은 아닙니다.
살아계신 주님을 나의 거처로
때론 피난처 돼 주시길 구하면
주님은 나의 영혼에 자리 잡아 주십니다.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
어린양의 피로 구속함을 받은 후
하나님의 인도하심인 구름 기둥과 불기둥을 따라가며
인도하심에 순종만 하는 단순한 삶을 살았다면
가나안 복지에 들어가는 축복을 누릴 수 있었을 텐데,
애굽 돌아보며 육신의 정욕을 따르는 불순종의 결과로
그들의 광야 40년 길은 실패와 사망의 길이었습니다.
주님! 단순 되게 주님 한 분 바라보고 기대하며
나그네와 행인처럼 이 땅에 뿌리 두지 않고
영원한 거처인 천국을 소망하며
주님을 늘 찬양하는…….
얼마 되지 않을 나의 시간들을 그렇게 보내고 싶습니다.
* 벧전 2:11, 시 71:14
주님 앞에 엎드림으로 시작된 오늘 길도
주님이 나의 목자 되어주시며
주의 막대기와 지팡이로 나를 안전하게
보호해 주실 것을 믿고 주님께 소망을 품을 때
나의 영혼이 평안해지며
감사한 마음으로 가득 채워집니다.
이 땅은
나그네와 행인들이 잠시 지나가는 곳이기에
우리가 몸 둘 영원한 곳은 아닙니다.
살아계신 주님을 나의 거처로
때론 피난처 돼 주시길 구하면
주님은 나의 영혼에 자리 잡아 주십니다.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
어린양의 피로 구속함을 받은 후
하나님의 인도하심인 구름 기둥과 불기둥을 따라가며
인도하심에 순종만 하는 단순한 삶을 살았다면
가나안 복지에 들어가는 축복을 누릴 수 있었을 텐데,
애굽 돌아보며 육신의 정욕을 따르는 불순종의 결과로
그들의 광야 40년 길은 실패와 사망의 길이었습니다.
주님! 단순 되게 주님 한 분 바라보고 기대하며
나그네와 행인처럼 이 땅에 뿌리 두지 않고
영원한 거처인 천국을 소망하며
주님을 늘 찬양하는…….
얼마 되지 않을 나의 시간들을 그렇게 보내고 싶습니다.
* 벧전 2:11, 시 71:14
있는 모습 그대로
박 정 학 전도사님
나의 죄악도, 나의 거짓됨도
나의 가증됨도, 삶의 무너짐도
그 무엇 하나 숨김없이 있는 모습 그대로 나아갑니다.
나의 자존, 나의 자아, 나의 조그만 힘
그 어떠함 채울 것 같은 애씀도 다 벗어놓고
있는 모습 그대로 나아갑니다.
내겐 그 무엇 하나 바라볼 것 없어서
주님의 긍휼하심을 구하는 마음도
있는 모습 그대로 나아갑니다.
주님의 아름다우신 인격을 바라보며
이 작은 날의 시간 손바닥만 한 구름 한 조각
잔잔함 기쁨 속에 따라갑니다.
나의 가증됨도, 삶의 무너짐도
그 무엇 하나 숨김없이 있는 모습 그대로 나아갑니다.
나의 자존, 나의 자아, 나의 조그만 힘
그 어떠함 채울 것 같은 애씀도 다 벗어놓고
있는 모습 그대로 나아갑니다.
내겐 그 무엇 하나 바라볼 것 없어서
주님의 긍휼하심을 구하는 마음도
있는 모습 그대로 나아갑니다.
주님의 아름다우신 인격을 바라보며
이 작은 날의 시간 손바닥만 한 구름 한 조각
잔잔함 기쁨 속에 따라갑니다.
주님과 나의 골방
박 주 은 자매님
오늘 하루,
작은 것 하나 주님의 뜻을 따르기 위해
주님과 나만의 골방에 들어가
그분의 마음을 헤아려봅니다.
이른 새벽 엎드리는 나의 침대,
출근길 지하철 문 옆의 조용한 자리,
많은 시간을 보내 가는 내가 앉은 책상,
잠시 거닐고 있는 텅 빈 복도
주님께 나아가는 그 어디든
주님과 나의 골방이 됩니다.
그 자리에서 그분 음성 귀 기울일 때,
오늘도 평강 속에 살아갑니다.
작은 것 하나 주님의 뜻을 따르기 위해
주님과 나만의 골방에 들어가
그분의 마음을 헤아려봅니다.
이른 새벽 엎드리는 나의 침대,
출근길 지하철 문 옆의 조용한 자리,
많은 시간을 보내 가는 내가 앉은 책상,
잠시 거닐고 있는 텅 빈 복도
주님께 나아가는 그 어디든
주님과 나의 골방이 됩니다.
그 자리에서 그분 음성 귀 기울일 때,
오늘도 평강 속에 살아갑니다.
조용한 묵상, 큰 기쁨
정 건 웅 집사님
눈감고 주님 앞에 앉은 이 시간.
세상의 요란한 소리도 닫히고
하늘의 별도 닫히고
주님과 나 사이 하늘 이슬에 젖어가는
복된 시간입니다.
공중에 요란한 모든 것들이 땅에 내려앉듯
조용한 묵상 속에 주님 부어주신 은혜 속에
풍성히 잠기는 이 시간.
시간마저 멈춘 듯 오직 주님께만 주목하는
주님께 이끌린 마음,
주님께 매인 영혼이
참 자유와 기쁨을 누립니다.
단순 되게 내려놓고
주님과의 사귐에만 집중할 때
은혜와 기쁨이 차고 넘칩니다.
주님과 함께 걷는 이 길,
얼마나 복되고 평안한지요.
일상의 한 걸음마다 위로가 되고,
삶의 가장 큰 기쁨이 되어주십니다.
세상 무엇도 이 기쁨을 대신할 수 없습니다.
걸음걸음마다 세밀히 인도하신 주님,
오직 주님만 붙들고 길 가렵니다.
세상의 요란한 소리도 닫히고
하늘의 별도 닫히고
주님과 나 사이 하늘 이슬에 젖어가는
복된 시간입니다.
공중에 요란한 모든 것들이 땅에 내려앉듯
조용한 묵상 속에 주님 부어주신 은혜 속에
풍성히 잠기는 이 시간.
시간마저 멈춘 듯 오직 주님께만 주목하는
주님께 이끌린 마음,
주님께 매인 영혼이
참 자유와 기쁨을 누립니다.
단순 되게 내려놓고
주님과의 사귐에만 집중할 때
은혜와 기쁨이 차고 넘칩니다.
주님과 함께 걷는 이 길,
얼마나 복되고 평안한지요.
일상의 한 걸음마다 위로가 되고,
삶의 가장 큰 기쁨이 되어주십니다.
세상 무엇도 이 기쁨을 대신할 수 없습니다.
걸음걸음마다 세밀히 인도하신 주님,
오직 주님만 붙들고 길 가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