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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선에 부치는 편지

2013-09-28 / 63 회차

전선에 부치는 편지



그 누군가의 기도로

취적리교회 배 명 자 집사님

군대! 병사!
듣기만 해도
딱딱해 보이고
긴장된 모습이 느껴지는 단어가

그 누군가의
눈시울 붉어진 기도의 시간 속에
친숙하게 기억되어지고
그 이름이 불려진다는 것은
의미 있고 감사한 일인 것 같습니다.

거칠고 삭막한 광야에서
밤이슬 맞으며 맞이하는 아침
처음부터 익숙하진 않았겠지만
어쩔 수 없는 환경 속에서
빈들이 되어 있는
병사들의 가슴에

그 누군가의
눈물어린 기도 속에서
닫혀 있던 마음의 빗장이 열려서
하늘가는 시온의 대로가 가깝게 보이고
그 빈들에서
주님의 손 놓지 않고
꼭 붙들고픈 마음이 모두에게 있었으면 …

곁에 늘 있어서
예전에는 그렇게까지 소중하게 붙들지 못했던
부모님의 사랑이 그리워
목메어본 시간들
모두에게 있었을 것입니다.

병사들에게 주어진
소중한 시간의 빈들에서

그 누군가의
부르짖는 기도의 응답으로
광야에 찬바람 일어
얼어붙기 쉬운 병사들의 가슴에
따뜻한 사랑의 손길로 다가와 주시는
주님께 대한 고마움으로
눈물샘 마르지 않고
흘러 내려서
가슴을 적시는 아름다운 모습들 있었으면!

어머니보다 더 따뜻한 주님의 사랑

강 영 희 집사님

익어가는 가을.
오늘도 전선에서 밤낮으로 수고하는 군 형제님들께 아들에게 편지하는 마음으로 이 글을 써봅니다.
몇 해 전 아들이 엄동설한에 군 입대 하면서 복무를 시작할 때 육신의 어려움보다 영혼이 주님 안에 잘 서 가도록 날마다 기도했었죠.
남편이 오랫동안 군 생활을 했지만 아들을 군에 보낸 마음은 주님 주시는 또 다른 기도로 시작되었습니다.

매주 수요예배 마치고 밤마다 성전에서 엎드려 한 밤을 아들의 영혼을 위해 주님께 자비와 긍휼을 구했습니다. 홍천에 있는 신병교육대에서 훈련 받을 때와 자대배치 받고 군 생활할 때도 일주일에 두세 번씩 편지를 써서 주님의 군사로 서 달라고 당부했었는데, 군 복무기간 동안 보냈던 이백여 통의 그 편지들은 지금도 아들의 방에 주님 사랑의 흔적으로 남아있습니다.

당시 될 수 없는 여건 속에서 군종병으로 섬기게 된 아들은 주님의 인도하심에 감사드렸고 교회 나오는 부대원이 얼마 되지 않던 부대교회는 부흥이 되어 주님의 일하심에 더 많이 감사드렸습니다.

유달리 훈련이 많고 고된 일과가 연속이었던 시간들 속에 힘들어도 힘들다고 하지 아니하였습니다. 손등이 동상 때문에 시커멓게 되어 휴가를 나와도 괜찮다며 밝은 모습을 보여준 아들은 전역을 몇 개월 앞두고, 전문하사가 되어 군에서 좀 더 뜻깊은 섬김을 해보고 싶다고 하여, 육 개월의 군 생활을 연장하였던 것도 주님께서 이끌어주신 값진 시간들이었습니다.

지금 이 시간, 우리 군인 형제님들!
군 생활 힘들고 어려울 때가 적지 않겠지요? 그러할 때 주님 바라보고 의지해보세요.

주님께서 여러분의 환경 속에 길과 진리와 생명 되어 주시고 힘 되어 주실 것입니다. 어머니보다 더 따뜻하고 복되신 주님의 사랑이 주님의 아들 된 사랑하는 형제들 한분 한분들에게 함께 하실 것입니다.
이를 위해 비록 부족한 자이지만 오늘도 어미의 마음을 품고 무릎을 꿇어 보렵니다.
군 생활 내내 평안하시고 군사답게 강건하세요!

주 안에서 사랑하는 형제님들께!

경남 함양 마천교회 김 양 중 목사님

우선 조그만 편지로 문안 인사와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하나님의 사랑하심과 우리 주님의 보호하심과 더불어 가장 꽃다운 나이에 군에 입대하여 많이 수고해 주시고 섬겨주시는 형제님들로 인해, 이 나라의 평안과 안정은 잘 유지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주 안에서 형제님들의 수고가 헛되지 않을 줄 믿고, 주님께서도 넘치는 자비와 은혜로서 함께해 주실 줄로 믿습니다.
들려오는 소식들을 통해 우리 주님께서 군부대 안에서 일해주시는 은혜가 풍성하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얼마나 감사했던지요!
그의 나오심이 새벽빛같이 일정하다고 말씀하심처럼, 형제님들이 언제나 정함 있는 마음으로 주님을 추구해 감으로 더욱 믿음에 부요하고 강건한 뜻깊은 군 생활이 될 것을 기대해 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30여 년 전 군에 입대할 때 만일 나에게 주일날 자유롭게 예배드릴 수 있는 시간만 주어진다면, 감사한 마음으로 군 생활을 하겠다는 다짐 속에 논산훈련소에 들어가던 때가 기억이 납니다.
당시에는 비록 고생스러웠어도 돌이켜보면 주님께서 긍휼 베풀어 주시고 함께해 주심 속에 참 좋은 추억으로 남아있는 것 같습니다.

주님으로 의미가 있는 시간들(군 생활)!
저는 주변의 여러 사람에게서 자신은 군대생활을 할 때 예수님을 영접하여 세례를 받고 신앙생활을 하게 되었다는 고백을 들어 보았습니다.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는 말씀처럼, 혹은 “새벽이슬 같은 주의 청년들이 주께 나오는도다”라는 말씀처럼, 나의 군 생활 기간에 간절한 마음으로 주님을 찾고 주님을 만나게 되는, 의미 있고 보람된 시간으로 보낼 수 있는 것은 커다란 은총임이 틀림없는 것 같습니다.

오늘도 나와 함께해 주실 주님을 기대하는 마음으로 나아가는 하룻길!
“내가 과연(결단코)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과연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말씀하실 때, “주는 나를 돕는 자시니 나는 무서워 아니하겠노라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오”라고 응답하는 것처럼, 우리의 다양한 여건 속에서 주와 함께라면(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라면이래요….) 얼마든지 족한 마음과 감사한 마음으로 지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때로는 우리의 보내는 시간들이 여러 가지 일과로 혹은 어려운 훈련으로 보내겠지만, “네가 예수 그리스도의 좋은 군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을지니”라고 말씀하심처럼, 신앙적으로는 우리가 주님을 더욱 강하게 의지하며 더욱 철저히 주님께 속해가는, 주님 보시기에 좋은 군사로 더욱 새로워질 수 있는 기대감과 소망을 가져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혹 우리에게 한가한 시간이 주어질 때도 그 시간들이 무의미하게 흘러가는 시간이 되지 않도록 유의해 보는 것도 필요한 것 같습니다.

우리는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이끌어 광야 길을 인도해 준 모세가 지난날 미디안 광야에서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내가 이방에서 객이 되었다.’라는 뜻의 ‘게르솜’이라고 지을 만큼, 겉으로는 무료한 생활 같았어도 그때의 시간들은 참된 의미로 주님을 깊이 알아가고 주님께 깊이 잠기어 갔던 의미 있는 40년 기간이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들도 주님께 깊이 잠기어 갈 때 우리가 군복을 입듯이 주님 입혀주시는 빛의 갑옷을 입고 밝은 영혼으로 아름답게 살 수 있을 것 같고요, 날마다 주안에서 새 힘을 얻어 힘찬 걸음으로 전진할 수 있을 것 같고요, 나의 상담자와 위로자 되시는 진실하신 주님께 나아가 나의 갖가지 일들과 문제들을 주님께 상의 드리면서 외롭지 않고 주님의 위로 속에 넉넉한 마음으로 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형제님들!
마지막으로 제가 좋아하는 로마서 8장 말씀을 생각해 보면서 편지를 맺고자 합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위험이나 적신이나 칼이랴 기록된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케 되며 도살할 양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언제나 주 안에서 평안하시고 승리하세요!!
감사드리며….

시련이란 친구가 찾아 올 때

김 윤 동 권사님

형제님!
오늘도 육안으로 알고 있는 형제의 얼굴을 헤아리라 한다면 다섯 손가락으로 셈이 끝날 텐데 마음으로 헤아리며 기도 속에서 더듬어 볼 때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형제님들이 내 작은 마음에 파도처럼 밀려들곤 합니다.

서해 5도,
휴전선 155마일,
동부 서부 전선,
비무장지대 안 GP,
후방,
육·해·공군….

어느새 저의 목소리는 대포소리처럼 커지고 엎드렸던 위치가 바뀌어버릴 만큼 기도는 뜨겁고 간절하답니다.
그때마다 이 간절함은 내가 아니요 형제님을 진심으로 사랑하시는 예수님의 간절한 마음이라는 것을 확인하곤 한답니다.

사랑하는 형제님!
많이 힘드시죠?
시편을 지은 아름다운 성도님이 그러시는데요.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시 119:71)
또한 “고난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시 119:67)

고난이라는 것은 자기로써 감당키 어려운 갖가지 장벽이라 생각됩니다. 그러나 그 성도님은 실망치 않고 감사함으로 견뎌갔을 때 그 모든 고난들은 그에게 큰 유익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우리 형제님이 걸어가시는 여러 가지 환경들이 형제님의 인생길에 시편의 성도님 같은 아름답고 축복스런 고백이 되시길 저는 또 작은 골방에 앉아 부르짖어 봅니다.

형제님!
우리 형제님의 남은 인생길이 오히려 닫힌 것 같은 이 환경을 통하여 우리 하나님께 나아가는 축복의 기회가 되기를 소망하여 보면서, 어느 성도님의 군에서 있었던 아름다운 경험을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그는 천식이란 지병을 가지고 입대하였습니다.
그런데 자기보다 조금 먼저 온 상병으로부터 미움을 받아 아침마다 매일 연병장을 돌아야 하는 고통을 겪었다 합니다.
속은 견디기 힘들었지만 신앙 좋으신 그의 어머님의 격려로 근근이 견뎌가는 하루하루였대요. 그런데 어느 날 그 형제님은 기도하시는 어머님께 이런 편지를 보내 왔습니다.

『어머니!
저는 오늘에야 하나님의 축복이 가면을 쓰고 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동안 연병장을 돌면서 때로는 화가 나고 자존심도 상하고 그날로 단번에 끝장을 낼 생각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완전 군장을 하고 구보를 하면서 저는 엉엉 울고 말았습니다.

지난번 구보 때는 천식으로 숨이 차서 뛰지 못하고 쓰러졌는데 오늘은 아무렇지도 않게 거뜬히 다 뛸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상병을 통하여 저의 지병인 천식을 다 고쳐 주신 것입니다. 그 상병이 너무 고마워서 고맙다고 경례를 했더니 의아한 표정을 지으면서 내일부터는 뛰지 말라는 것입니다.

어머니!
내일부터는 저 스스로 뛰겠습니다.
어머니께 이 기쁨을 할렐루야! 소리쳐 보내드립니다.』

형제님!
우리의 인생 여정에
시련이란 친구가 찾아 올 그때는
우리의 눈을 하나님 향하여 들고
우리의 마음을 그분께 열어드림이 좋습니다.
그분은 언제나 우리를 기다리시니까요!

형제님이 누리기 원했던 진정한 자유와
맛보길 원했던 진정한 기쁨과
사그라지지 않는 영원한 행복은
우리를 죄 가운데서 건져 주시고
죄 짓지 않도록 함께 살아주시는
우리 예수님 손안에만 들려 있답니다.

차가움의 계절이 다가옵니다.
형제님의 영혼이 주님께 나아가므로
늘 승리 있기를 기도합니다.
평안하십시오.

전선에서의 안식

전남 영광 영서교회 김 병 수 목사님

성경에 나타난 모든 믿음의 사람들의 공통된 모습은 공포의 전선에서 주님의 안식을 누렸던 것입니다.
골리앗과의 전투에서 다윗은 주님의 안식을 누리고 있었습니다. 느브갓네살 왕과의 살벌한 전선에서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는 주님의 안식을 누렸습니다. 주님은 정말 우리에게 안식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도, 고난 받으신 것도, 우리에게 이 땅에서 그리고 영원한 나라에서의 영원한 안식을 주시기 위해서였습니다.
히브리서 4장 9절에 하나님의 백성에게 안식할 때가 남아 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에게 고통의 때, 절망의 때, 낙심의 때가 남아 있는 것이 아니라, 안식의 때가 남아 있습니다.

그러면 그 주님의 안식 속으로 들어가기 위해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미 그의 안식에 들어가는 자는 하나님께서 자기 일을 쉬신 것 같이 자기 일을 쉬느니라”(히브리서 4장 10절).

이미 주님의 안식에 들어간 사람들의 한결같은 모습들은 하나님께서 자기 일을 쉬심과 같이 자기 일을 쉬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자기 일을 쉰다.’는 의미는 자신의 무엇을 근거로 한 일 또는 육신의 생각에 이끌리어 하는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사울이 왕으로 선택되었을 때 어떤 비류들이 멸시하였지만 그는 잠잠하였더라"
이것이 자기 일을 쉬는 자의 모습으로 보여집니다. 이미 그 심령은 안식에 들어갔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블레셋과 전투하기 전 규례를 어기고 자신이 친히 번제를 드렸다는 것은 이미 그 마음속에 자기의 일을 육신이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리고 성 전투는 자기 일을 쉬는 자들의 아름다운 모습과 그 결과로 주어지는 놀라운 승리를 볼 수 있습니다. 기도온과 삼백 명의 군사는 자기 일을 쉬는 사람들로만 구성되었습니다.
가인은 자기 일을 쉬지 못하므로 그 안색이 변하였으므로 그릇된 길로 가고 말았습니다.
육으로 부터 나오는 생각이든 행동이든 자기 일을 쉬어야만 안식으로 들어갑니다.

히브리서 4장 11절에 안식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고 했습니다.
육신은 계속 자기 일을 하도록 충동질합니다. 그것과 힘써 싸워야 합니다. 주님의 안식에 들어가지 못하면 결국 순종치 않는 자의 본에 빠진다고 했습니다.
우리 모두는 자기 일을 쉬고 주님의 안식에 들어가야 합니다.

온 맘 다해

신 윤 희 선교사님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요15:13)

정말 누군가가 자신의 목숨을 버리고 나를 구해 줄 사람이 있다면, 그렇게 목숨을 버릴 만큼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은 없을 줄로 압니다.
세상에 단 한분 계시지요.
그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저는 복잡한 세상에서 그 주님을 만난 것 아닙니다. 저 또한 형제님들과 같은 얼룩무늬 군복 입고 알 수 없는 외로움, 공허함과 씨름하고 있을 때 간절히 그분을 사모했더니 주님이 찾아와 주셨습니다.

성서에서만 읽었던 그 주님을
일대일로 만나 교제할 수 있다는 것!
세상을 다 얻은 것이지요.
제 안에 두려움이 사라졌습니다.
지금 저의 가장 큰 기쁨은 모든 것을 다 드려도 아까울 것이 없는 그 주님을 모신 것이고, 채워도 채워도 또 채우고 싶은 분은 오직 그분뿐입니다.

형제님!
2년이란 시간 결코 짧은 시간 아닙니다.
형제님에게는 세상에 사라져가는 순수함과 곧은 마음이 있다는 것을 압니다.
주님이 찾고자 하는 마음의 밭이지요.
형제님의 그 마음 밭에 주님의 사랑이 깊이 뿌리 내릴 수만 있다면 정말 온 맘으로 주님께 매달려 보고 싶습니다. 아니 예전보다 더 간절히 기도할 것입니다. 형제님의 인생을 가장, 가장 가치 있게 보시는 분은 바로 우리 주님이십니다.
그 주님 뜨겁게 한번 사랑해 보십시오.

고마워요

이 학 순 권사님

계절이 바뀌어도 밤낮으로 나라를 지키시는 우리 형제들을 위하여 기도 속에서 잠시 편지를 띄우게 되어 감격스럽네요.

제가 젊었을 때 남편이 군인이던 때가 있었어요. 군인 형제들과 함께 군부대 교회에서 나라와 민족과 군인형제를 위하여 열심히 기도하는 일이 하루 일과 중에 소중한 일이었어요.
전후방을 옮겨 다니면서 젊은 우리 청년들이 나라를 지키느라 수고하는 것이 얼마나 고마웠는지요! 젊고 무엇이든 마음먹으면 할 수 있을 것 같은 시기에 나라를 위하여 몸으로 봉사하시는 그 아름다운 마음에 더 간절한 기도가 되었어요.

부모와 형제는 가까이 늘 뵈올 수 없지만 좋으신 예수님 모시고 힘차게 군 생활 잘 감당하실 수 있도록 후방에서 끊임없이 기도할께요. 나라를 위하여 고된 훈련도 견디며 밤이슬 맞으며 잠과 싸우며 지금도 서 있을 형제님! 고마워요.

군 생활이 어렵겠지만 주님과 함께라면 좋은 군사로 지낼 수 있으리라 믿어요.
주님의 크신 은혜와 사랑이 형제님과 늘 함께 하시길 바라오며 주 안에서 잘 계시옵기를….

후방에서 주님의 군사드림

와서 깨어 있는 것을 보면 (눅 12:37)

하 미 자 권사님

어느 한 밤,
주님 앞에 잠겨보는 시간들 속에서
누가복음 12장 말씀이 다가왔습니다.

“주인이 와서 깨어 있는 것을 보면
그 종은 복이 있으리라”라는 말씀이
강하게 붙잡혀 와서
더욱 깊이 있게 묵상해 보았습니다.

주인이 그곳을 떠나
어느 곳에 가셔서
오랫동안 먼 곳에 계셨다 오시든지
잠시 떨어져 있으시든지
종이 그 주인님을 위해
순전한 마음으로 성실히 기다리며
깨어있다 만나 뵈었다면

그 주인님은 흡족해 하시고
서로에게 조용한
기쁨이 흘렀을 것을 생각해 보며
다시 새롭게 다짐하였습니다.

우리들의 삶은 만만치 않습니다.
그러나
오늘 부딪히는 환경들
극복해야할 극한 상황들
때론 무미건조한 일상들 가운데서도
긴장감 속에 주님 향하여
주님과 함께
깨어 있는 삶을 지켜감으로

아무도 알 수 없는
나만이 아는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로
하나님의 나라가
평강 속에 가득 채워지는 것을 느껴봅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히12:1)
여러분들의 길이
정말 힘들고 어려우시겠지만,
그래도 우리의 진정한 구주 되시고
우리 각자의 반석 되시고
빛 되신 예수님을 바라보며
남은 길, 이기는 자로 나아가시길
기도드리고 싶습니다.

전선을 향하여

김 아 가 권사님

어느 한 밤,
주님 앞에 잠겨보는 시간들 속에서
누가복음 12장 말씀이 다가왔습니다.

“주인이 와서 깨어 있는 것을 보면
그 종은 복이 있으리라”라는 말씀이
강하게 붙잡혀 와서
더욱 깊이 있게 묵상해 보았습니다.

주인이 그곳을 떠나
어느 곳에 가셔서
오랫동안 먼 곳에 계셨다 오시든지
잠시 떨어져 있으시든지
종이 그 주인님을 위해
순전한 마음으로 성실히 기다리며
깨어있다 만나 뵈었다면

그 주인님은 흡족해 하시고
서로에게 조용한
기쁨이 흘렀을 것을 생각해 보며
다시 새롭게 다짐하였습니다.

우리들의 삶은 만만치 않습니다.
그러나
오늘 부딪히는 환경들
극복해야할 극한 상황들
때론 무미건조한 일상들 가운데서도
긴장감 속에 주님 향하여
주님과 함께
깨어 있는 삶을 지켜감으로

아무도 알 수 없는
나만이 아는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로
하나님의 나라가
평강 속에 가득 채워지는 것을 느껴봅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히12:1)
여러분들의 길이
정말 힘들고 어려우시겠지만,
그래도 우리의 진정한 구주 되시고
우리 각자의 반석 되시고
빛 되신 예수님을 바라보며
남은 길, 이기는 자로 나아가시길
기도드리고 싶습니다.

사랑하는 형제님께!

형제님!
우리가 우리나라라고 부를 수 있는
동해안의 끝자락(북쪽),
우리가 자유로이 행보할 수 있는
맨 북쪽 강원도 고성군에선
그 유명한 금강산이 보인다지요?

한반도의 중추 뼈처럼 자리 잡은 태백산맥에서
갈비뼈처럼 뻗어 나아간 척량산맥의 시발점.
남북으로 60㎞, 동서로 40㎞.
적지 않다지만
북미의 로키산맥이나 대협곡에 견주면
조그마하고 아담하다고 표현될만한 그곳.

그래도 온 세계의 명산 중에
이곳 들러보지 않고선
명산을 얘기하지 말라고 한다는 이곳.

그 섬세함, 그 웅장함, 그 갖가지 모양,
거기다가 철 따라 갈아입는 그 아름다움은
그 언제나 사람들의 마음을 온통 사로잡는
그래서 내가 누구이며
내가 왜 사는가를 잊게 하여서
그 속에 나를 던져버리고 싶다는
마음이 든다고 전하여 주었던 그곳.

그곳에 불교의 사찰이 있고
기독교의 수양관이 있다지만
깊게 정진하지 않는다면
어느덧 그 산세에 사로잡힐 수 있을만한 그곳.

한 이름으로 부르기에는 아까워
내금강, 외금강, 해금강, 신금강이라 나뉘어 불러도
그 하나하나가
결코 왜소하게 느껴지지 않았을 그곳….

형제님!
모르긴 해도
그곳 가는 그 길이 지금 닫혀 있지만,
또 열린다면 갈 사람들 많을 것 같습니다.

짤막한 위의 내용이라도
많은 이들의 마음이 진정 주목하고
온 마음 향할 그 무엇을 갖지 못했다면
얼마든지 이끌려 갈 그곳이라 생각됩니다.

형제님!
지금은 9月 중순이라 해도
며칠 전 이른 시간
강원도 산골에서 만난 기온은
싸늘함이 아니라
뼛속으로 스며드는 차가움이었습니다.

거친 그리고 긴장감이
그 언제나 깃든 철책에서
깊은 밤을 지새우고 이른 시간을 맞는,
아직 내의도 갖추지 못한 채 맞는
요즈음의 시간은
한겨울 차가운 날씨보다
때론 훨씬 힘들게 느껴질 수 있을 것입니다.

분명 젊은이지만 전선의 형제님은
분명 혼자임도 사실일 것입니다.
배운 것, 들은 것, 본 것들이
그 어느 세대보다 풍성하다고 하겠지만
깊은 밤 긴장감 속에 응시하며
언뜻언뜻 지나가는 형제님의 마음속에
진정 나의 것으로,
나의 그 무엇으로 붙잡히는 것
정말 없을 것입니다.

오래전 산 위에서
외부적인 이런저런 일보다는
내 영혼의 초라함 때문에
실컷 울던 그 모습이 꼭 나만의 고백일까요?
결코 그렇지 않은 줄 압니다.

진정한 나를 잃게 하는 그 무엇은
잠시 나를, 그러한 나를
잊게 하는 그 무엇은 될지 몰라도
진정한 해답이 못됨은
형제님은 스스로 너무나도 잘 아실 것입니다.

이러한 길에서 우린 얼마든지
잃어진 자기를 그대로 지닌 채
오늘, 내일, 모레
그리고 계속 걸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은 그나마
나를 진실 되이 생각해 볼 수 있는
참된 시간이라도 있지만
조금 후의 오늘의 길에서 벗어난
나름대로 자유롭다는 우리는
걷잡을 수 없이 밀려오는 그 무엇에 허둥대며
떠밀려 시간을 보내기 쉬울 것입니다.

형제님!
아무런 재미없어 보이고
주어진 엄격한 근무에
그리고 삭막한 거친 환경!

여기에서 내 진정 의지할 수 있고
내 진정 내 사랑으로
나에게 가장 소중함으로
그 언제나 함께 하실 수 있는 분으로,
내게 오늘의 진정한 삶을 주실 수 있는
진정한 내 벗, 내 주님으로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그 예수님을 주목한다는 것은
그 얼마나 소중한 일인가요!

만약에 오늘의 우리 세대에
그리고 오늘의 나에게
그 갈보리 십자가에 못 박히셨던
그 나사렛 예수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전심으로 주목할 나의 진정한 구주,
나의 진정한 주님이 되어 주지 않으신다면
오늘의 우리에겐 해답이 정말 없을 것입니다!!

차가운 환경,
마음속 깊이 느끼는 상한 갈대의 나,
무거운 짐처럼 느껴지는 오늘의 주어진 상황,
스스로 어찌하기보다는 매여 가는 나 ….

형제님! 형제님!
만약에 제가 오를 수 있는 이 산봉 위에서
형제님이 서 계신
그 산 위, 그 계곡, 그 강물 곁에
제가 소리칠 수만 있다면
온 정성 다 해, 온 마음 묶어서 소리치고 싶습니다.
진정 내가 동경하며 바라볼 곳, 기대할 곳
금강산 아니라고요!

그리고 오늘 대부분의 청소년들과 젊은이들이
무너져 버리고 진정한 자아를 상실해 버린,
얼마 후엔 여러분들이 나아갈
그럴듯해 보이는 그곳의 그 무엇이
우리의 해답 아니라고요!

일찍이 어려움 속의 다윗, 요셉,
사르밧 여인, 야곱에게 진정한 삶을 주시었던
그 주님께 마음으로 다가서 보기를
온 마음으로 권하여 봅니다!

금강산 가는 길을
어려웁게 생각하고 싶지 않습니다.
짧은 쉼의 시간으로
오늘의 분요한 이들에게
잠시나마의 휴식 공간으로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내 진정 오늘의 초라한 나에게
그곳이 결코 해답 될 리는 없습니다.

주님을! 그 나사렛 예수님을!
휴전선 너머 금강산 뚜렷이 있듯이
지금 부활의 영토에서
내 구주, 내 주님으로
서 주시고자 하시는 그 예수님을
내 주님으로 앙망한다면,
금강산은 우리에게 빛을 줄 수 없지만
주님은 분명히 나의 빛으로,
금강산은 결코 우리에게
조그만 쉼 이상의 그 무엇 줄 수 없지만
주님은 우리에게
뚜렷한 생명으로 다가와 주실 것입니다.

금강산을 아무리 주목하고 구경한들
그리고 아무리 오래 머문들
여러분이 자기를 이기고,
그릇된 불의를 이기고,
척박한 환경을 이기고,
밝고 사랑스러운 자로 설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여러분의 계신 곳에서 주목하는 그 주님은
여러분에게 적어도 자기를 상실하지 않는
진정한 보람 있는
오늘의 값진 삶을 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아무리 배우고 안다고 뽐내어도
그분 없인 상실한 자임을
우리 스스로 잘 압니다.
그분과 함께는 결코 그렇지 아니할 줄 압니다.

해답 없는 삶이
마치 인생의, 우리의 몫인 양 얘기한다면
진실하게, 참되게,
겸손히 내 구주, 내 주님을
찾았고, 만났고, 살아갔으며
온 가슴으로 그 소식
진실 되이 전하여 주시었던,
먼저 이 땅을 걸어가시었던
그분들의 그 진실한 소리에
귀 기울임이 정말 필요할 것입니다.

오늘의 그 어떠한 우리가 살아있음이 사실이듯이,
저 태양과 저 달과 이 지구의 운행이
놀라웁게도 정말 질서 있듯이,
그분의 자비로우심
우리에게 그러하실 것을 힘입어 가시는
그래서 비로봉보다도
더 의미 있는 한분 한분들로,
저 만물상보다도
더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오늘의 주어진 길속에서
겸손히, 조용히 알찬 마음으로
행복한 걸음으로 길 가시는 형제님 되시길
이날도 기도드리고 싶습니다.

난 형제님이
저 금강산처럼 화려하고 굉장하지는 않지만,
정말 수수하고 조용하지만,
그래도 우리 주님으로 인하여
저 금강산은 그렇게 보고 싶지 않지만,
정말 뵙고 싶고
정말 조용한 그의 영광의 빛과
그의 은혜의 이슬에 젖은
가까이 대하고 싶은
진정한 그의 형상 되시길 구하고 싶습니다.
정말 그러합니다!!

2013. 9월에

먼 곳에서나마 마음으로 그리워하며
기도하는 이가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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