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3-06 / 83호
    조그만 나의 빈들판
    오늘 나의 빈들
    수민교회 김 인 재 집사님
    주님!
    오늘 나의 빈들에서
    주님을 바라보옵니다.

    이곳에서 나의 주님과
    조용한 사귐은
    제 영혼을 새롭고 온전하게 합니다.

    보아스의 발치 이불을 들고 누웠듯이,
    산 위의 주님 곁에 눕듯이,
    누군가 지나간 듯한
    큼지막한 발자국 옆을 밟으며
    작은 언덕을 오르는 마음으로

    나의 빈들에서
    큰 무릎담요 덮고
    조용히 나리시는
    주님의 이슬에
    젖어가고 싶습니다.

    내일,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 빈들의 시간은
    저를 살리는 생명의 시간입니다.

    주님! 저는
    주님 없이는 살 수 없습니다.

    오늘도 나의 주님이 되어주셔야 합니다.
    그 길에서만 살고 싶습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Chapter I.
    천성을 향하여
    최 병 남 권사님 (97세)
    “어린 자식 일곱을 수레에 싣고
    가파른 언덕길을 홀로 넘을 때
    눈물이 앞을 가려 갈 수가 없네.
    뒤에서 누군가 밀어주는데
    눈앞이 환해져서 뒤를 돌아보니
    주님이셨네.”

    그렇게 만난 주님!
    인생의 무거운 짐 다 주님께 맡기고
    주님 사랑, 식구님들 사랑 속에 만난 주님!
    “나는 이 두 손으로 주님만 꼭 붙들고 산다.
    어서 교회 가자. 가다가 죽어도 가야지야!”
    한 걸음 두 걸음 어느덧 아흔 입곱
    돌보아 주신 주님!

    “감사하다. 너무나 감사하다!
    다 주님 잘 믿으라고 그러지야?”
    넘치는 사랑 속에 감격과 감사로 가는 길.

    “어서 기도하자. 기도가 제일이다.
    기도하면 다 들어주신다.
    우리 교회는 기도하는 교회다.”
    평범하고 작은 날들이지만
    기적처럼 주시는 소중한 하루!

    육체는 쇠하여가도
    마음은 갈렙 할아버지처럼
    “주를 앙모하는 자 올라가! 올라가!
    독수리같이!!”
    찬송과 함께 오늘의 천성 길
    힘차게 솟아오릅니다.
    Chapter II.
    새봄
    조 병 례 집사님
    봄 동산 오르며
    그리움과 사모함으로
    주님을 앙망합니다.

    춥고 긴 겨울 지나고
    이슬 머금은 가지 위로
    고요한 사랑과 위로가
    따뜻하게 빛납니다.

    아무 쓸모 없고 무익한 자
    못 자욱 난 손 내미사
    생명으로 인도하시는 주님!

    그 큰 은혜 힘입어
    제 영혼의 떨리는 가지 끝
    작은 꽃망울로 맺히오니

    오직 당신만을 위하여
    짙은 사랑의 꽃 피우고
    예비하신 하늘 은총으로
    부활의 언덕 오르게 하옵소서.
    Chapter III.
    오 늘
    김 성 애 집사님
    저는 오늘이라는 이 새로운 한날을 허락해 주신 주님께 감사 가득한 마음을 가져보면서, 이 하룻길 주님 모시고 단단하게 걸어가야 할 저의 자세를 다시금 새겨 보았습니다.

    먼저는 마태복음에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두고 기뻐하여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샀느니라”(13:44)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보화가 감추인 밭을 자기 소유를 다 팔아서 샀다고 합니다. 그 소유를 다 판다는 의미를 곱씹어 볼 때 제가 가진 것의 값어치 있는 것, 좋은 것, 쓸모 있는 것, 사실 그런 것도 별로 없지만 그런 것만 내어놓는 것이 아니라 제가 가진 어리석은 것, 약한 것, 정말 값을 쳐 줄 수 없는 그 모든 것을 다 내어놓는 것입니다. 주님은 제가 감추인 밭을 사고자 할 때 안 되는 나, 못된 나, 그 어떤 것도 나로 인한 것은 조금도 남기지 말고 그 모든 것을 다 내어놓고 사라고 하시는 것 같습니다.

    정말 주님의 크신 긍휼이요, 무한한 사랑이시라 생각 되어지고 나를 잘 아시는 주님께서 베풀어 주시는 큰 은혜입니다. 나를 온전히 다 내어놓고 오직 주님, 주님 한 분만 사야지 오늘 하룻길에서 안 되는 나를 생각하고 바라보며 어려워하고 주저앉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안 되는 나, 못된 나는 주님의 십자가로 오늘도 새롭게 다 넘겨버리고 오직 주님, 주님만 마음에 새기고 주님만 모시고 오늘 길을 새롭게 걷고 싶습니다.

    무능하고 악한 나를 온전히 다 내어놓고 팔아서, 긍휼과 은혜로 내어주시는 보화가 감추인 밭을, 내 주님을 오늘도 온전히 새로이 사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 주님께 사로잡힌 자로, 주님을 머리 삼고 생각과 마음을 주님의 이끄심에 귀 기울여 순종하며 따르고 싶습니다. 나의 미련한 것은 다 팔았는데, 육신의 생각과 마음이 나를 주장하지 못하도록 주님을 앙망하며 주님을 꼭 붙잡고 새로운 오늘 한날을 주님의 은혜로 감당하고 싶습니다.

    므비보셋처럼 절름발이여서 주님을 좇아가지 못했다고 어리석음을 변명하는 자 되지 않고, ‘어떻게 살아갈까?’ 스스로 염려하고 어려워하지 않고, ‘나는 못 해요’ 하지 않겠습니다.

    나의 모든 것 되어주시는 주님 앙망하며, 주님이 이끌어 주시는 그 길에 순종하며 아기 같은 마음으로 ‘주님, 오늘은 무엇을 할까요?’라고 하는! 나는 보잘것없고 부족해 보일지라도 주님이 동행해 주시는 그 길이 온전하며, 그 길이 진정 나의 하룻길이 되고 나의 삶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새겨봅니다. 그렇게 할 때 얼마나 마음에 평강이 되고 감사가 되고 또 가슴 뛰는 기쁨이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주님! 이틀 길, 삼일 길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오늘 주어진 이 하룻길! 주님의 음성을 듣고 따르는 주님의 양으로, 주님의 포도나무 가지로, 주님의 명령을 기쁨으로 따르는 주님의 돕는 이로 신실히 서고 싶은 간절한 마음입니다. 사랑하는 주님! 오늘 이 하룻길 긍휼로 붙들어 주옵소서. 아멘!
    Chapter IV.
    지리산에서
      저는 지리산 골짜기에 살고 있습니다.
      제가 몸이 많이 아파서
      자리에 누워 있을 때
      진토리교회에서 전도를 오셔서
      예수님을 전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나서
      건강도 많이 좋아졌고
      마음에 평안도 얻었습니다.

      지금은 진토리교회 예배를
      방송을 통해서 드리고 있는데
      예배 시간이 많이 기다려집니다.

      지리산 골짜기에 살고 있는
      나를 찾아주신
      예수님을 생각하면 마음이 기쁘고
      진토리교회 예배를 통해서
      은혜를 받고
      항상 감사드리면서 살고 있습니다.

      - 박 문 재 할아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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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님께서
      나 같은 부족한 사람을
      택해주시고 사랑해 주셔서
      항상 감사합니다.

      진토리교회에서 전해 주시는
      복음을 들으면
      말씀이 마음을 파고듭니다.

      이렇게 귀한 말씀을 들으면서
      사는 것이
      기쁘고 감사합니다.

      진토리교회를 통해서
      부족한 저에게 주시는
      주님의 사랑과 은혜를 마음에 품고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진토리 식구님들 감사합니다.

      - 이 봉 자 집사님
      Chapter V.
      타작마당과 이슬
      윤 희 옥 집사님
      사사기 6장 37~47절에 나오는 타작마당의 양털이 하룻밤은 양털에만 이슬이 젖고 사면은 말랐고, 하룻밤은 양털은 마르고 사면은 이슬에 젖어 있는 말씀을 묵상하면서 주님께서 비춰주시는 말씀이 참으로 감사했습니다.

      이곳에서 제 마음 가운데 타작마당과 이슬이 크게 부각 되어 왔습니다. 농부가 알곡을 얻기 위해 곡식을 터는 타작마당은 바로 자기를 벗는 곳이라는 마음이 많이 들었습니다. 자기를 그대로 보존하고서는, 자기를 그대로 입고서는, 주님이 내려주신 이슬에 젖어 갈 수 없다는 마음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기드온이 일찍이 일어나서 양털을 취하여 이슬을 짜니 물이 그릇에 가득하더라”(38절) 나를 벗어 버릴 때, 주님께서 주시는 은혜의 이슬은 내 영혼을 적시어 주시며, 이웃의 영혼도 적시어 줄 수 있는 풍성한 은혜를 힘입어 간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사무엘상 10장에서 떡 세 덩어리 가진 사람이 생각났습니다. 자신의 영혼뿐만 아니라 이웃의 영혼도 섬겨가는 그 복된 영혼이고 싶다는 마음이 강하게 밀려왔습니다.
      나의 육을 벗어버리지 못한다면, 나의 사면의 환경이 은혜를 받을 수 있는 이슬에 적셔갈 수 있는 환경이라도 그 축복의 이슬이 나에게 내리지 않는다는 마음이 많이 들면서, 벗어버리지 못한 내 육이 있는지 점검해보면서 주님의 자비를 구해보았습니다.

      알곡과 쭉정이가 구별되는 타작마당에서 날마다 은혜의 이슬에 젖어 있는 참된 알곡이고 싶고, 나를 벗기 위해 나를 미워하는 삶도 더 철저히 하면서 주님의 은혜로 살고 주님의 은혜로 조그만 섬김들도 신실하게 하고 싶은 마음도 많이 들었습니다. 요즈음 저는 특별히 감사가 많이 되는 것이 있는데요. 주님이 나의 영혼의 감독이시라는 것이 자주 마음에 새겨져 오고 묵상을 하곤 합니다.

      2021년도에 품고 살아갈 다섯 가지 말씀을 자주 되새겨 보며, 내가 무엇이라고 이 무익하고 부족함 투성이인 내가 무엇이관대 찾고 찾아서 만나주시고, 짐승의 소리가 끝없는 광야에서 어쩌면 오늘도 이 세상은 광야인대 내 영혼을 넘어뜨리려고 하고 상하게 하려는 이 광야에서, 나를 지시하시고 나를 눈동자처럼 지켜 가신다는 말씀은 잊을 수가 없는 것 같습니다.

      감독은 선수 개개인에게 지시가 다르다는 마음이 들면서, ‘감독되신 주님이 저에게만 지시해주시는 그 지시를 받을 수 있는 관계로, 더 잘살아야지!’라고 마음 품어보면서, ‘나를 벗지 못해서 나의 감독 되신 주님의 지시를 받을 수 없는 그런 어리석은 자가 되고 싶지 않습니다.’라고 많이 고백을 드려 보았습니다.
      오늘도 내 영혼의 목자 되시고 감독 되시는 주님의 인도하심과 주님의 지시하심 따라서 이 복된 길 잘 가고 싶습니다.
      Chapter VI.
      귀 뚫은 종의 하루
      신 윤 희 선교사님
      주님!
      신명기 15장 귀 뚫은 종의 하루처럼
      오늘을 살고 싶어요.

      “주인님 떠나서는 이젠 못 살아요.”
      이 겸손한 고백 속에
      오늘도 주인님께 다스림 받는 삶을
      참으로 기쁘게 여기는 삶!

      어제와 같은 오늘이라도
      내 주인님 위해
      오늘을 성실 되이 살고자 하는 마음!

      “어찌하면 내 주인님
      참 기쁘시게 해 드려 볼까?”
      이 하나의 단순된 마음으로만
      오늘을 사는 귀 뚫은 종의 하루처럼요!

      사랑하는 주인님 집에 사는 자신을
      참 행복한 자로 여기며 만족해하는
      하루하루였을 것 같아요.
      저도 그렇게 살고 싶어요. 주님!
      Chapter VII.
      풍란처럼
      문 석 종 장로님
      주님! 사랑합니다. 그리고 그립습니다.
      이 시간 나의 앉고 일어섬
      나의 생각에 함께 계신 주님.
      이 세상의 요란함 속에서도
      나의 반석으로 서주시는 주님.
      날마다 새롭게 주님 안에 불러주시니
      제게는 더 이상 구할 복이 없는 것 같습니다.

      주님!
      주님의 보좌가 너무너무 가깝습니다.
      그 보좌를 바라볼 때
      제 마음 너무너무 벅찬 마음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세상이 아무리 흉흉해도
      주님 안에는 참된 안식이 있습니다.
      그 안식 속에서 새로운 원함이 솟구칩니다.
      영혼들을 향한 뜨거운 사랑이 끓어오릅니다.

      주님!
      주님의 은혜가 넘칩니다.
      모진 풍랑 속에서도 꿋꿋하게 견디며
      꽃을 피워 향기를 날리는 풍란처럼
      저도 이 좁은 길에 굳게 서서
      이 빈들, 이 땅끝에 굳게 서렵니다.

      오늘은 주님이 허락하신 이곳에 굳게 서서
      주님을 향해 꽃을 피우렵니다.
      변함없이 굳은 마음으로 견고히 서서
      짙은 향기로 하늘 바람 타고
      주님 향해 달려가겠습니다.
      Chapter VIII.
      홍색실의 길
      수민교회 이 상 분 권사님
      주님! 사랑합니다. 그리고 그립습니다.
      이 시간 나의 앉고 일어섬
      나의 생각에 함께 계신 주님.
      이 세상의 요란함 속에서도
      나의 반석으로 서주시는 주님.
      날마다 새롭게 주님 안에 불러주시니
      제게는 더 이상 구할 복이 없는 것 같습니다.

      주님!
      주님의 보좌가 너무너무 가깝습니다.
      그 보좌를 바라볼 때
      제 마음 너무너무 벅찬 마음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세상이 아무리 흉흉해도
      주님 안에는 참된 안식이 있습니다.
      그 안식 속에서 새로운 원함이 솟구칩니다.
      영혼들을 향한 뜨거운 사랑이 끓어오릅니다.

      주님!
      주님의 은혜가 넘칩니다.
      모진 풍랑 속에서도 꿋꿋하게 견디며
      꽃을 피워 향기를 날리는 풍란처럼
      저도 이 좁은 길에 굳게 서서
      이 빈들, 이 땅끝에 굳게 서렵니다.

      오늘은 주님이 허락하신 이곳에 굳게 서서
      주님을 향해 꽃을 피우렵니다.
      변함없이 굳은 마음으로 견고히 서서
      짙은 향기로 하늘 바람 타고
      주님 향해 달려가겠습니다.
      Chapter IX.
      오직 예수님
      동행교회 박 영 주 사모님
      당신의 음성에만 집착해 가고
      그 속에 깊이 뿌리를 내려
      생명의 진액을 받아 마시며
      작고 아름다운 열매
      풍성하게 맺어드리고만 싶습니다.

      내 조그만 빈들에서
      그 얼굴빛 전심으로 구하는 나는
      그분께만 온 맘 묶어둔
      그의 신부입니다.

      당신이 다가오실 때까지
      등불 밝게 켜 들고
      그리운 마음으로 애타게 기다리는 나는
      당신만의 사람입니다.

      주님! 나에게는
      오직 당신뿐입니다.
      Chapter X.
      그의 백성
      박 원 철 목사님
      첫째 : 내가 주님의 사람이라면 그리움과 강한 마음속에 내 주님과의 사귐이 살아 있습니다(고전 1:9).

      주님과의 사귐이 하나님의 뜻이고 하나님의 은혜인 것은 분명하지만, 그것이 목적만 되고 행하지 않는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겠습니다. 주님과의 사귐을 해야겠다는 필요성을 알면서도 하지 못한다면 내가 주님의 사람으로 살 수가 없습니다. 예전 청년 때 종교적인 의무감으로 ‘quiet time’ 조용한 시간을 갖고자 했는데 아무런 힘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주님께 대해서 그리움으로, 또 어떨 때는 마음이 힘들지라도 강한 마음으로 주님과의 사귐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시편 42편과 43편 성도의 고백처럼,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나는 내 얼굴을 도우시는 내 하나님을 오히려 찬송하리로다.” 그렇게 뼈 있게 언약적으로 내 주님과의 사귐을 이어가는 것이 참으로 소중한 것 같습니다. 요한복음 20장에 그 새벽 주님의 무덤에 찾아와서 그 무덤 밖에 서서 울던 막달라 마리아를 생각해봅니다. 떠나지 않고 울고 있던 막달라 마리아를 결국 만나주셨던 우리 주님이십니다. 그리움 그리고 강한 마음속으로 주님과의 사귐을 계속 이어가고 싶습니다.

      둘째 : 내가 주님의 사람이라면 내가 아니라 주님이 나의 모든 것입니다(고전 1:30).

      나 스스로 지혜롭게 되고 싶지도 않고, 주님 없는 솔로몬의 지혜는 생각하기도 싫습니다.
      주님과 상관없는 스스로의 능력, 삼손의 능력이라도 그것은 꿈꾸고도 싶지 않습니다. 주님과 함께 하는 그 길, 그래서 주님이 나의 사랑이시고, 주님이 나의 생명이시고, 주님이 나의 참된 지혜이시고, 주님이 나의 참된 능력이 되는 삶으로 살아가는 것! 그것이 주님의 사람입니다. 그래서 주님과 십자가에 못 박히신 주님만을 알기로 작정된 이 단순된 마음으로 천국 길 가고 있습니다.

      셋째 : 내가 주님의 사람이라면 나는 주님의 연고로 살아갑니다(고전 4:10).

      그리스도인은 세상 사람들처럼 이 땅에서 부귀영화를 누리고자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주님의 연고로 미련하고, 주님의 연고로 약하고, 주님의 연고로 고난받고, 비천에 처할지라도 오히려 기뻐하고 주님께 감사를 드리고 살아갑니다.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들이 더 지혜롭고, 더 존귀케 되고, 온전케 되기를 원하는 마음이 간절합니다. 나는 다만 주님의 사람으로 길을 갈 수 있다면 주님의 연고로 이 모든 것은 참고 주님과 함께 언제 어디서나 할렐루야입니다! 그래서 주님의 연고로 내 주님의 돕는 이로, 내 주님의 밭으로 그리고 하나님의 성전 된 영광의 길을 계속 가고 싶습니다.

      넷째 : 내가 주님의 사람이라면 주님과 연합하여 한 마음, 한 영으로 살아갑니다(고전 6:17).

      따라서 세상일을 염려하기보다는 ‘어찌하여야 내 주님을 기쁘시게 할꼬?’ 하는 이 참된 염려가 마음속에 있습니다. 나의 일의 어떠함보다는 주님의 일, 몸 된 교회가 주님의 영광스런 길을 가도록 기도하고 염려합니다. 내 삶의 그 어떠함 속에 번거롭게 지내기보다는 주님께 속한 단순된 마음으로 주님의 허락 속에서 분요함 없이 평강 속에 주님을 섬겨가는 길! 주님과 연합하여 한 영으로 살아가고 싶습니다.

      다섯째 : 내가 주님의 사람이라면 나는 주님을 본받고, 또한 ‘나를 본받으라.’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고전 11:1).

      사도행전 26장에 보면 사도 바울 선생님은 가이사랴에 갇혀 있으면서 아그립바 왕 앞에서 “당신뿐 아니라 오늘 내 말을 듣는 모든 사람도 다 이렇게 결박한 것 외에는 나와 같이 되기를 하나님께 원합니다.”라고 강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저도 제 자녀들에게 아빠가 이렇게 몸이 연약한 것 외에는 너희가 내 영혼처럼 주님과 함께 살기를 원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식구님들께도 주님을 원한다면, 주님과 함께 살기를 원한다면 ‘나를 본받으라, 나와 같이 되기를 원하노라’고 하는 중심이 있어야 될 줄 압니다. 그 중심 속에서 우리는 복음의 길로, 전도의 길로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섯째 : 내가 주님의 사람이라면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 안에서 사랑하는 형제들과 함께 동고동락하는 한 지체임을 기뻐합니다(고전 12:26, 27).

      에베소서 4장에서는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여 온 몸이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자라나고 사랑 안에서 몸이 세워진다.”라고 말씀합니다. 주님의 영광스러운 몸, 예수님을 머리로 붙잡을 때 각자가 주님을 머리로 붙잡고 사랑하는 형제들이 함께 연합할 때 주님의 몸은 영광스럽게 세워져 갑니다. 저는 어떤 특이한 자가 아니라 한 형제로서 분량껏 주님의 지체로 살고 싶고, 형제들과 함께 주님의 나라를 세워가고 싶습니다.

      마지막 일곱째 : 심지가 견고하여 흔들리지 않고 항상 주의 일에 힘쓰는 자가 주님의 사람입니다(고전 15:58).

      세상은 요동합니다. 그러나 주님과 언약적으로 맺어 있는 주님의 사람이라면 심지가 견고하고 흔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들쭉날쭉하지 않고 항상 변함없이 주님의 일에 힘쓰게 될 줄 압니다. 이와 같은 영광스러운 삶, 이 길이! 천성 가는 날까지 끝까지 이어지기를 바라고 싶습니다.
      Chapter XI.
      보좌의 주님
      나 은 정 집사님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계시느니라”
      (골 3:1)

      요즘 저에게 축복이 되었던 귀한 말씀입니다. 주님과 함께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고 하신 ‘위엣 것’을 묵상해 볼 때,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계시느니라”라는 말씀이 축복이 되었습니다.

      이 말씀을 생각해볼 때 계시록 22장에 나오는 축복이 저에게도 함께하여 주셨습니다.
      “수정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라” 주님의 십자가로 철저히 나를 처리해 버리고, 부활하신 예수님께 온 마음으로 속하여 보좌에 계신 주님을 바라볼 때, 생명수의 강이 “하나님과 어린양의 보좌로부터 나서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과실을 맺히되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소생하기 위하여 있더라”는 그 축복된 말씀. “다시 저주가 없으며 하나님과 그 어린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 있으리니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기며 그의 얼굴을 볼 터이요 그의 이름도 그 이마에 있으리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주님의 그 보좌.
      사도 요한이 밧모라는 섬에서 고된 일들과 제한된 환경들 가운데 있었지만, 그러한 축복된 보좌를 강하게 인식하므로 주님의 보냄 받은 주님의 종으로, 또 그곳에서 주님의 일을 이뤄가며 하나님의 나라의 일들을 순종하여 섬겨갔던 것처럼, 오늘 나의 삶도 보잘것없지만, 보좌에 계신 주님께서 나를 향하여 서 주시고 또 내게 보이시는 하늘 보좌가 오늘도 나의 보좌인 것이 축복이 되었습니다.

      “위엣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계시느니라”라고 하셨고, 골로새서 3장 4절에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라는 말씀이 있는데, 오늘 주님을 나의 목자로, 나의 주님으로 온 마음으로 바라보고 앙망하고 주님을 찾고 구할 때, 그 보좌의 주님은 오늘도 나의 목자로 살아계셔서 역사해 주십니다. 그 생명으로 성령으로 오늘 나의 삶을 임마누엘 되신 내 주님으로, 끊임없이 인도해 주시는 그러한 축복이 있다는 것을 생각해볼 때 너무나 감사가 됩니다.

      저 대신 싸워주시고 일해주시고 역사해 주시는 나의 왕 되어주시는 보좌의 주님!

      오늘도 내게 살아계셔서 나를 그 생명으로, 주님의 평강으로 그리고 내가 살 수 있고
      붙들 수 있는 귀한 말씀으로 가득 채워주시는
      은혜를 생각해 볼 때 정말 감사가 되었습니다.
      보이는 세상도 내게 실상이고, 육체도 가지고 있지만, 이제는 보좌가 내게 그 무엇보다도 사실이고, 그 보좌에 앉으신 주님이 나에게 생생하게 역사해주심을 바라볼 때 많은 감사가 됩니다.

      시편 139편에 “주의 생각이 내게 어찌 그리 보배로우신지요 그 수가 어찌 그리 많은지요 내가 세려고 할찌라도 그 수가 모래보다 많도소이다 깰 때에도 오히려 주와 함께 있나이다”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깨어있는 마음으로 보좌의 주님을 바라볼 때는 나를 향한 그 생각이 얼마나 많고 보배로운 것인가를 깨닫게 됩니다. “내가 깰 때에도 오히려 주님과 함께 있나이다”라고 하셨듯이, 우리 주님은 저를 한시 동안도, 한순간도 떠나지 않으시고 눈동자처럼 지키시고 인도하십니다. 이렇게 철저하게 주목하여 나를 훈계하시는 주님은 나를 눈동자처럼 지키시고, 임마누엘 되신 예수님께서 나를 위해 싸워주시고, 일해주십니다. 놀라우신 그 보좌를 생각할 때 너무 감사가 되었습니다.

      저도 내 주님을 향하여서 철저한 마음으로 주님께 속하고 보좌에 계신 주님을 온 마음으로 앙망하고 추구하며 찾아감으로 오늘도 멈춰 서 있는 자가 아니라, 내 주님의 보좌를 향하여 늘 나아가고 올라가고 싶은 마음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사무엘상 7장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사모할 때 사무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너희가 전심으로 여호와께 돌아오려거든 이방신들과 아스다롯을 너희 중에서 제하고 너희 마음을 여호와께로 향하여 그만 섬기라”고 하셨던 그 말씀이 제 마음에 새겨졌는데요. 그 말씀 가운데 “너희 마음을 여호와께로 향하여”라는 말씀입니다. 제 마음에 정말 강한 중심이 있다면 주님을 앙망함으로 주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주님께 대해서 살아가지 아니하고 그렇게 살아주시고 싸워주시고 역사해 주시는 그 왕 되신 주님께 대해서 살아가지 아니함으로 주님이 멀고 주님을 버리고 자기들의 왕을 구했던 것을 보면서, 오늘 보이지 않지만 보좌에서 살아주셔서 진정한 나의 왕으로 서주시는 주님께 대해서, 온 마음으로 살아가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많이 들었습니다. ‘귀 뚫은 종의 마음이 이런 마음이었지 않을까?’란 생각이 듭니다.

      “내가 여호와께 청하였던 한 가지 일 곧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나로 내 생전에 여호와의 집에 거하여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앙망하며 그 전에서 사모하게 하실 것이라”(시 27:4)
      저도 이런 마음으로 주님을 향하여 올라가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Chapter XII.
      내 주님과 함께
      박 성 혜 집사님
      평범한 오늘
      내 주님과 함께
      믿음의 담대함 얻고
      평강의 길 걷는 삶이
      얼마나 큰 행복인지요.

      흉흉한 갈릴리 바다를
      잔잔케 하신
      나사렛 예수님!
      오늘의 크고 작은 파도를
      그의 사랑의 연고로
      사랑과 기쁨으로
      붙들어 가시는 주님!

      나를 미워하는 그곳에
      나의 주님만
      유일한 몫으로
      내 전부로 바라보면서

      귀 있는 자로
      오늘의 거친 광야
      내 주님의 생명으로 노래하듯
      천성 가는 길
      온 기쁨과 감사함으로 오르고 싶습니다.
      Chapter XIII.
      임마누엘
      평강교회 김 주 영 강도사
      오래 전 천사가 마리아에게 전해 주었던 것과 같이 주님의 이름은 ‘예수’와 ‘임마누엘’이라는 두 가지 이름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주님의 이름이 죄사함을 위한 ‘예수’라는 이름뿐만이 아니라 오늘도 나와 함께 살아주실 ‘임마누엘’이 되신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요.
      주님이 저에게 임마누엘이 되어주지 않으신다면 오늘도 저는 마실 포도주가 없고, 생수가 없어 목마를 것이고, 목자가 없어 방황할 것이며, 빛이 없어 어두움에 붙잡히는 자로 살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이 땅에는 내가 ‘함께’할 자들(부모, 형제, 남편, 아내, 자녀, 친구, 스승...)이 많이 있지만 이 모두를 분리시키고, 저 자신까지도 분리시키면서 산비둘기로서 진정 내가 함께해야 할 분은 주님이십니다.

      ‘주님과 함께’가 전부가 되기 위해서 이 모두를 분리시키지만, 주님은 저에게 이 땅에서 가장 좋은 부모와 형제와 남편과 아내와 자녀와 친구와 스승으로서 나와 함께 살아주실 것입니다.

      주님이 나를 위해서 죽으신 그 목적이 이것이었던 것과 같이, 자든지 깨든지 주와 함께 사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Chapter XIV.
      주님을 기쁘시게(참된 지식)
      김 병 수 목사님
      주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에서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밤에는 불 기둥으로 인도하셨는데 어젯밤에도 불 기둥의 인도를 잘 받으셨는지요?

      고린도후서 5장 9절에 보면 “그런즉 우리는 거하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 되기를 힘쓰노라”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사도 바울 선생님의 고백입니다.
      사도 바울 선생님뿐 아니라 참 주님의 백성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믿음의 소원일 것입니다. 생각해보면 정말 감사할 일입니다. 우리가 참 주님의 백성이 되어 이런 믿음의 소원을 가지고 살 수 있음이 참 복입니다. 만약에 참 주님의 백성이 안 되었더라면 ‘내가 나를 어떻게 기쁘게 할까?’라고 하면서 허송세월을 보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말합니다.
      아무리 좋은 믿음의 소원을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잠언 19장 2절에 “지식이 없는 소원은 선치 못하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예를 들면 내가 주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고 싶다는 믿음의 소원을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어떤 것이 주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것인지, 어떻게 해야 주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지식이 없다면, “지식이 없는 소원은 선치 못하다”라는 말씀에 포함되고 말 것입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신앙생활을 해오면서 저의 마음속에 나도 주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고 싶다는 믿음의 소원이 자리를 잡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길은 매우 어렵고 힘들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주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것은 아주 많이 훈련된 성도님들이나 내가 나를 영적으로 많이 만든 후에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잘못된 지식이었지요. 그래서 저는 주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겠다는 믿음의 소원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것은 지식이 없는 소원이었기에 잠언 19장 2절 말씀처럼 선치 못한 것이 되었습니다.

      그 이후에 알고 보니 주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것은 그렇게 힘든 일이 아니었습니다. 아니 도리어 너무 쉬워 크게 감사가 되었습니다.
      ‘주님, 이렇게 쉬운 방법으로 주님을 기쁘시게 해드릴 수 있다니 감사가 됩니다. 이것을 모르고 제가 너무 많이 방황했네요. 가르쳐 주시니 감사드립니다.’라는 고백이 터져 나왔습니다.

      언제 주님이 기뻐하십니까?
      어떻게 할 때 주님이 기뻐하십니까?
      그렇습니다!
      예수님을 나의 근거로 붙들 때 기뻐하십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우리에게 구원의 근거로 보내주시고 귀한 주님의 백성들이 예수님을 나의 근거로 붙들기를 정말 정말 원하십니다. 나의 터로 붙들기를 정말 정말 원하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예수님을 나의 근거로 붙들었을 때에 주님께서 기뻐하시면서 내가 어떤 경우라도 예수님을 나의 근거로 붙들고 주님 앞에 나간다면 주님은 받아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예수님을 나의 근거로 붙드는 것이 어려운 일일까요?
      아닙니다. 너무 쉬운 일입니다. 그냥 믿음으로 붙들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나의 근거로 붙드는 자에게 주시는 은혜는 너무 커서 말로 표현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이것을 몰랐습니다. 로마서 10장에 유대인들의 상태에 대하여 이렇게 지적합니다. “저희가 하나님께 열심은 있으나 지식을 좇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의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 하였느니라”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열심은 있었습니다. 저희가 하나님께 열심은 있으나 그들 나름대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려고 매우 매우 노력했던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고 싶은 열심과 소원은 있었으나 지식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소원은 잠언 19장 2절 말씀처럼 선치 못한 것이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로마서 10장 3절 말씀처럼 하나님의 의에 대한 지식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의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의는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요?
      그것은 바로 예수님을 나의 근거로 붙들었을 때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런 지식이 없기에 로마서 10장 말씀처럼 스스로 의를 만들려고 스스로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썼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실 과거 저의 모습도 이러했습니다.

      오늘 하룻길에서 주님을 나의 근거로 붙들고 이 하루를 살아간다면, 주님은 참으로 기뻐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진심으로 예수님은 나의 근거로 붙들고 사는 일은 흔들리거나 요동하지 않습니다. 도리어 이 은혜를 주신 주님께 감사와 감격 속에서 승리의 삶을 살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 부인도, 십자가 지는 것도, 기쁨으로 감당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계속 예수님을 나의 근거로 붙드시는 하루가 되었으면 참 좋겠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남은 시간들이 되었으면 참 좋겠습니다.
      Chapter XVI.
      강한 마음
      강 주 영 자매님
      연약한 그때라도
      반석 되신 주님 바라보는
      강한 마음 놓고 싶지 않습니다.

      작은 유혹일지라도
      괜찮아 보이는 나일지라도
      나를 부인하는 강한 마음
      꼭 갖고 싶습니다.

      나약한 마음으로 인하여
      이리저리로 이끌려 다녔던 삶은
      이제 청산하렵니다. 나 싫어요.
      이제 주님께만 내 마음 정하여
      오직 주님의 사람으로 살고 죽으렵니다.

      그리고 그렇게 넉넉히 살아가도록
      자신을 다 내어주신 주님을
      오늘 나는
      강한 마음으로 인내하며 기다립니다.
      주님 바라보며, 앙망하며
      행복한 마음으로 기다립니다.

      내 모든 것 아시는
      주님을 바라봄이 정말 좋습니다.
      주님이 나의 주님이심이 정말 좋습니다.
      주님 주시는 겨자씨와 같은 마음들
      잘 따르고 순종하고 싶습니다.
      주여, 비춰 주옵소서!
      인도하여 주옵소서!
      Chapter XVII.
      주님의 얼굴
      박 둘 기 권사님
      이른 새벽 내 주님의 얼굴 그리워
      성전 향해 솟아올라
      조용히 무릎 꿇어 엎드려 봅니다.

      어느새 저를 기다리고 계신 것처럼
      다가와 주신 주님은
      그 얼굴 내밀어 주십니다.

      사랑스런 내 주님의 그 얼굴
      보아도 또 보고 싶은 내 주님의 얼굴
      내 주님의 얼굴에 묻혀 있노라면
      모든 것을 다 가진 자가 됩니다.

      내 주님의 그 얼굴이
      내게는 가장 소중하고
      가장 큰 기쁨입니다.

      오늘도 내일도 또 그다음 날이 온다 해도
      내가 이 땅에 머무르는 동안은
      끊임없이 내 주님의 얼굴 찾고 구하며
      늘 그 얼굴빛 속에서
      모든 것 가진 자로 살고 싶습니다.

      주님!
      오늘의 해답도
      오직 내 주님의 그 얼굴입니다.
      아멘. 아멘. 내 주님!
      Chapter XVIII.
      남은 길
        우리는 여호수아 13장에서 나이가 많은 여호수아에게 하나님께서 남은 길에 관해서 말씀하신 것을 기억합니다. 유업으로 얻을 남은 땅이 참으로 많이 있다는 것입니다. 애굽에서 구원을 받았고 주님 모신 광야에서 주님과 함께 믿음에 벅찬 삶을 살았고 가나안 땅에서 서른 한 왕을 무너뜨리고 주님과 함께 영광의 길을 걸어왔던 여호수아.

        이제 그만하면 다 된 것 아닙니까? 이제 그만하면 주님과 함께 굉장함을 누려온 삶이지 않습니까? 그것이 여호수아에게 들려주신 말씀입니다. 주님은 여호수아를 무시하고, 여호수아를 그냥 끝나면 된다고 말씀하지 아니하셨습니다.

        모세가 하나님을 향하여 저 요단 동편에 느보산 비스가산 꼭대기에 올라가서 장차 줄 유업의 땅을 바라볼 그때, 주님께서 그 간절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은총을, 긍휼을 기대해 보려는 모세에게 “그만하면 족하다”라고 하시었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 13장의 말씀은 주님께서 여호수아와 더불어 말씀하시지 아니한 것이 아니라, 남은 길에 관해서 여호수아에게 하신 말씀이셨습니다.
        어쩌면 아브라함이 창세기 12장에서 출발해서 13장에 하늘의 축복을 받고 14장에서 이기는 삶을 살았을 때, 그는 돌아와서 이제 조용하게 자기의 삶으로 돌아오고 싶은 마음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신앙생활은 이런 것이지. 이만하면 됐지.’ 이런 마음으로 그는 나머지 굉장한 것에 관심 두지 아니하고 전 마음으로 주님을 향하여 달려왔던 지나온 길과는 달리, 자기의 집을 돌아보며, 후손이 없는, 진정한 후손이 없는 것에 마음을 두는 자기의 삶으로 돌아온 그 모습이 창세기 15장과 16장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신앙 생활해서 정말 부모와 친척과 고토 떠나듯 주님께 온 마음으로 매여서 내 주님 향하여 날마다 살아왔고, 오늘도 내 주님 모시고 그분의 말씀을 존귀히 여기면서 살아왔고, 오늘도 어려움과 두려움 없이 담대한 마음으로 날마다 주 모신 삶을 강하게! 내 인격 속에 은혜로 강하게 살아와서, 주어진 길 속에서 나아가 주님과 함께 영광스러운 승리를 하고 돌아와서, ‘이제 신앙의 알맹이는 이만하면 얻었지 않겠나?’ 하고 여러분이 자기 삶을 바라볼 수 있는 그런 시간입니까?

        아브라함은 그런 것 같습니다. 창세기 15장이, 16장이. 그러나 하나님께서 축복으로 남겨두신 은혜는, 남겨두신 유업은 대단한 것 같습니다.

        아니, 그 이후가 더 풍성한 것 같습니다. 창세기 17장의 주님과 나 사이에 온전한 언약 속에서 그의 백성으로, 그의 사람으로, 은밀히 보시는 하나님 앞에 살고 있는 17장, 대단합니다!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어설픈 자 아닙니다. 주님과 연합된 언약이 있고, 생생한 주님과 나와의 동행 속에서 그의 사람으로 하나님을 향하여서 온전하게 살고 있는 17장. 오늘의 평범한 일과 생활 속에 이렇게 살고 있는 17장. 대단한 것입니다. 이것은 전날에 받은 그 은혜보다 훨씬 더 귀중한 것입니다.

        창세기 18장. 주님은 내 생활의 주인 되셔서 오늘 살아계신 나의 주님 되신 그분을 향하여 내가 깨어있는 마음이 느슨한 것 아닙니다. 대단한 것입니다! 오늘 그분이, 천국 가서가 아니라 이 땅에서 나의 주님이시고 내가 허리띠 동여맨 마음으로 그분을 향하여 일어선 마음으로! 모시고 섬기고 싶어 하는 그러한 마음으로! 귀를 기울이며 참으로 위하여 살고 싶은 그런 마음으로 살아간 생활은, 아브라함이 창세기 12장, 13장, 14장에서 가져본 생활은 아닙니다. 이 엄청난 것이 있는데 그 전에 다 끝난 것처럼 생각하렵니까? “남은 얻을 유업의 땅이 많이 있습니다.”

        물론 여호수아 13장은 주어진 남의 땅의 남은 유업을 가리킨 말씀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언제나 나 스스로 그냥 달려가서 얻을 땅은 하나도 없습니다. 주님과 나의 오늘의 생생한 사귐을 이어감으로, 내 주님과 나의 오늘의 생생한 사귐을 이어감으로! 형제와 따뜻한 마음으로 묶어진 뜨거운 마음을 가져감으로, 사사기의 그 길은 진행되어 가는 것입니다.

        오늘도 주님을 섬겨보는 영광이 있는 것입니다. 전쟁한다고, 주님과 함께 싸운다고 힘도 많이 썼겠지만 주어진 평온한 날들 속에 내 주님 온 마음으로 사랑하며, 묶어지며, 내 주님을 뜨거운 불붙는 마음으로 섬겨본 것, 이전엔 가져보지 못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길로 갈 때 나머지 더 풍성한 은총이 사사기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 사사기에서 멈추어 버리고, 주저앉아버리고, 짓밟혀버린 것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오늘 이천여 년 동안 지나왔던 기독교라 할지라도 참으로 우리가 오늘 깨어 있으면 엄청난 축복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엄청납니다! 그 깨어 있는 삶을 창세기 15장은 “네 후손이 하늘의 별과 같이 빛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얼마나 엄청난 축복입니까!
        왜 벌써 주저앉아요! 왜 벌써 느슨해요!
        지나온 받은 은혜가 족한 것처럼 그런 마음을 품어요! 그것은 늙은 사람의 자세입니다. 늙어버린 자세입니다!

        주님을 향하여 이 진지함으로 나아간다면, 아브라함의 영혼이 창세기 12장도 생생함이 있지만, 창세기 13장도 생생함이 있지만, 14장도 생생함이 있지만, 진정한 의미에서 17장처럼 깨어있다면 주님을 향하여 더 젊고 더 생생한 것입니다.

        창세기 18장, 내 주님으로 모신 마음이 더 생생한 것입니다. 창세기 21장, 이삭이 있고 사라가 있어도 나의 벗으로 주님을 가까이 모시고 내 주님의 이끄심 가운데서 이삭을 훈련시킬 만큼 한다면 그 집안은 주님의 뜻 가운데서 다스리고 있는 것입니다.

        창세기 22장에서 아브라함의 마음이 주님을 향하여 어떻습니까? 정말 젊습니다. 이때 아브라함의 나이는 정확히 기록되지 않았지만 백십칠 세쯤이라고 짐작해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거기서 아브라함은 정말 영혼이 젊고 그 사랑이 생생합니다.
        왜 벌써 늙었어요! 왜 벌써 어설퍼요! 왜 벌써 주저앉아요! 천국 갈 때까지는 걸어가야 되어요! 뜨거운 마음으로 말입니다.

        창세기 23장은 아브라함의 마음이 주님과의 부활의 영토에 있는 것입니다. 그것 아니면 오늘의 슬픔을 감당 못 합니다. 내 주님과 함께 부활의 영토에서 하늘 보좌, 하늘나라를 바라보는 그 영혼! 결코, 결코 늙은 영혼 아닙니다! 그것 잊어버린다면 오늘의 슬픔에 잠길 것입니다. 그것 있다면 소망과 기대감 있는 마음으로 오늘의 슬픔을 이길 것입니다.

        창세기 24장, 대단합니다! 오늘 내 현실이 있는데, 하나님의 예비하신 사랑을 기대하고 그 하나님의 이끄시는 방법대로 순종하고자 합니다. 얼마나 하나님이 오늘 나의 사랑의 하나님이십니까! 그것이 창세기 24장입니다. 온전합니다! 늙은 아브라함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유업을 기대하고 있는 아브라함입니다. 우리가 이러해야 합니다! 여호수아 13장의 의미를 새롭게 곱씹어 보는 것 필요할 것 같습니다.

        창세기 25장에서 아브라함이 현실에 주저앉는다면, 나름대로 새롭게 주어진 가정 속에서의 여건 가운데 그가 주저앉는다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거기서 생긴 자녀들, 거기서 생긴 그 무엇에 마음이 빼앗겼다면 아무것 아닙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주님께 온 마음으로 속하였기에 그가 순종하는 것, 주님께 기쁨 되는 온 마음의 순종이었습니다. 이삭을! 하나님의 뜻을! 그 말입니다. 이삭을!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존귀하게 여기고 나머지는 동쪽으로 다 내어보낸 것, 하나님의 다스리시는 긍휼로 일을 처리했습니다. 온전했습니다.

        생생한!
        예레미야 2장처럼 생생한! 예레미야 5장처럼 생생한! 예레미야 17장처럼 생생한! 예레미야 31장처럼 생생한! 주님과 나의 관계였습니다. 천국에 들어가는 그 날, 아브라함이 늙었다는 그 말 들을까요? 아니지요! 아니지요!!

        “아브라함은 내 음성을 최상의 그 무엇보다도 기쁘게 듣는 자이다. 나의 권고는, 정말 그 모든 것보다도 온 마음으로 나의 권고는 받아들이고 순종하는 자이다. 아브라함! 내 명령이라면 얼마나 기뻐하며 순종하는지! 그리고 오늘 길에서 새로운 마음으로 나를 따르는 마음 온전하다! 그리고 나의 법을 지키는 그 마음 정말 빈틈없다.” 그것이 창세기 26장에서 이삭에게 들려주신 하나님의 증언 아닐까요? 아브라함에 관한 증언 아닐까요?

        오늘입니다! 오늘 남은 유업이 많습니다. 벌써 늙으면 안 됩니다! 남은 얻을 땅이 많습니다! 그것은 주님과 나의 관계가 아니면 절대 못 얻습니다. 오늘 빈들판에서 기대감 있는 마음으로 여러분의 가슴이 뜨거워지고 불이 붙고 강한 마음으로 일어서게 되기를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다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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