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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선에 부치는 편지

2015-10-30 / 70 회차

전선에 부치는 편지



마음의 빈들에서

취적리교회 배 명 자 집사님

분주한 마음
아파하는 마음
원망하는 마음
가만히 내려놓고
조용히 마음의 빈들을 가지세요.

다 내려놓고
잠잠히 주님을 바라보면
용서해 주고 싶은 마음
사랑할 수 있는 마음
하늘로부터
당신에게 임해올 것입니다.

그리고
마음이 청결한 자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 … 되어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할 수 있는
섬김의 사람으로
당신을 일으켜 세워 주실 것입니다.

빈 손
빈 마음 되어
주님만 붙드는 손으로 찾아오기를
주님은 기다리고 계십니다.

당신의 힘으론
감당하기 어려운
갖가지의 짐이 있는 곳에
당신이 서 있다고 해도
그곳에서
기도의 문을 두드리세요.

그리고
당신을 향해 내미시는
주님의 손을
꼭 붙잡고 놓지 마세요.

주님이 붙들어 주시는 사람
주님의 사랑이 있는 사람
주님이 함께해 주시는 사람이 되어서
당신의 삶에서
당신의 얼굴에서
보여 주세요.

주님의 아름다운 사랑을
주님의 그 능력을!

전선에 마음의 편지를 띄웁니다

김 명 희 집사님

사랑하는 형제님들!
제가 여러분들께 사랑한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열심히 기도하다가 펜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저희 교회에서는 어느 하루도 거르지 않고 국군 장병들을 위해서 기도하고 있습니다. 올해도 10월과 11월에 18개 부대에 위문예배를 드려가고 있는데, 얼마나 많은 기도를 하겠습니까?

기도할 때마다 가슴이 참 벅찼고 뜨거웠습니다. 우리 목사님과 교회 온 식구님들께서도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기도 속에서 여러분들을 가슴에 품고, 그렇게 한 마음으로 기도하고 계십니다.

사랑하는 형제님들!
먼저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이 나라와 이 민족을 위해 수고해 주시는 여러분들이 참으로 자랑스럽고요, 마음으로부터 위로와 격려를 보냅니다. 그리고 고마운 마음과 감사의 마음이 가득합니다.
장병 여러분, 감사를 드립니다!!!
막연한 감사가 아니고요, 현재 전방에서 일병 계급장을 달고 근무하는 아들을 둔 엄마로서 여러분들의 수고를 구체적으로 잘 알기에 드리는 짙은 감사의 마음입니다.

사랑하는 형제님들!
저희 교회에서 기도 가운데 마음과 정성으로 쓴, 『전선에 부치는 편지』 한편 한편을 소홀히 여기지 마시고 끝까지 마음으로 읽어 주세요.
그곳에 인생의 해답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여러분들을 너무너무 사랑하고 계십니다.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해 주시고 부활하셔서, 오늘도 우리에게 길과 진리와 생명이 되어 주시는 예수님을 잘 알고 계시죠?
예배를 통해서 많은 말씀들도 들으셨죠?
그리고 성경 말씀을 읽고, 그 말씀을 마음에 담고, 새기며, 묵상해 보세요.

이제는 그 예수님을 믿고, 생활 가운데서 그 예수님을 모시고 따르는 삶을 살아야 하는데요, 신앙생활은 추구하는 마음이 가장 중요한 것 같습니다.
여러분들의 마음속에,
"예수님을 내 마음에 모시고 살고 싶습니다."
"기도 생활도 열심히 하고 싶습니다."
이렇게 추구의 마음이 강할 때, 예수님께서는 사랑으로 조용히 다가와 붙들어 주실 거예요. 그 예수님을 인생의 주인으로 모신다면 가장 가치 있는 삶이 될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생활관에서도 기도 가운데 선임과 후임들에게 예수님의 사랑으로 섬겨 보신다면 얼마나 주님께서 기뻐하실까요!
이렇게 될 때 여러분들의 삶이 바뀌고, 또 여러분들의 생활관의 분위기도 바뀌게 될 것입니다. 제대하는 그날까지 예수님 한 분 붙잡고,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점점 짙어지는 멋진 군 생활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해 봅니다.

사랑하는 형제님들!
우리 삶의 해답은! 인생의 해답은!
‘예수님’ 이십니다!!

나를 찾고 찾으면 만나리라

양 경 주 집사님

저물어 가는 늦가을!
벌써 전선의 바람이 조석으로는 싸늘함으로 다가오기도 하겠지요? 그러나 그러한 것들에 아랑곳 하지 않고 주어진 업무의 묵묵한 수행 속에서 전술훈련과 월동준비로 여념이 없을 형제님들! 먼저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믿음직스러운 군 형제님 여러분!
저는 여러분들에게 우리나라의 「간성」 「최후의 방패」 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군복을 입고 있는 군 형제님들이 아닌, 그 누구에게 이러한 고귀한 단어들을 붙여 줄 수 있단 말입니까?
저는 얼마 전에 남과 북이 최고조의 대치 상황(전쟁 직전) 속에서 들었던 군부대의 한 소식으로 인해 여러분들이야말로 진정 우리나라의 최후의 보루라는 사실을 확신하고야 말았습니다.

어느 날, 그 부대는 강당에서 전 장병들이 대대장님의 정신교육을 받고 있던 중에 북한군이 남쪽지역에 포탄을 발사했다는 소식을 듣고, 대대장님의 명령 하에 곧바로 각자의 전투 위치로 돌입하기 위해 뛰어가는 상황 속에서 한 병사가 앞서서 전투진지로 뛰어 가던 중에, 잠깐 뒤에 뛰어오는 동료들을 돌아보았는데, 아! 마치 "죽으면 죽으리라는 결의에 찬 자세"로 선임병, 후임병 할 것 없이 모두가 전투화에 흙먼지를 날리면서 달려가는 그 모습 속에서 그 병사도, "나도 이 대열에 서 있는 모습이 정말 자랑스럽다." 라고 생각하면서 전투진지로 투입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얼마나 군 형제님들이 자랑스럽고 마음 든든하고 이 나라를 맡길 수 있는 모습인지요!
군 생활이 자기를 단련해 볼 수 있는 얼마나 좋은 곳인지요!
통제된 시간(기상, 식사, 교육훈련, 취침, 경계근무 등) 가운데서 인내와 규칙을 배우고, 보고 싶은 부모님을 뵈올 수 없는 가운데 부모님께 대한 그리움을 느낄 수가 있으며, 옷과 양말을 직접 세탁하면서 어머님께 대한 사랑을 깨달을 수 있는 더없이 좋은 곳이기도 하지요. 그래서 저는 군대야말로 「인격 정신교육도장」이라고 부르기도 한답니다.

그러나 형제님들!
군 환경(생활)이 고통스럽고, 마치 빈들판에 홀로 서 있다는 생각이 많이 들 때도 있을 것 입니다. 사실, 이러한 빈들판은 여러분들을 얼마나 단련시키고 성장시키는 곳인지 모릅니다.
한편, 빈들판에 혼자인 것 같지만, 곁에서 손 내밀어 주시고, 동행해 주시는 그 예수님을 만나시기 바랍니다. 보이지 않는 예수님께서 여러분의 등 뒤에서 여러분을 밀어주고 안전하게 지켜주실 것입니다.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예레미아 29장 13절) 란 말씀처럼, 여러분들이 예수님을 찾으실 때, 예수님은 여러분들을 만나 주실 것입니다. 군 생활 가운데 선한 목자(요한복음 10장)이신 예수님을 따르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는 여러분들을 양으로 여기시고 보호해 주실 것입니다.

그러기에, 일요일(주일)이면 군부대에 있는 교회에 나가셔서 생명의 말씀을 듣고, 예수님을 배우고 알아가고 만나시기 바랍니다. 혹시, 믿음을 갖지 않은 군 형제님들이 계신다면, 인생에 있어서 가장 가치 있고 소중한 기회! 그것은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입니다. 전역하시는 그 날까지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그 예수님 바라보세요!

김 지 정 권사님

봄, 여름, 가을, 겨울 산새가 깨기 전 새벽이슬 맞으며 기도처로 달려가 군부대 장병들을 위해 기도하는 할머니 전사입니다.
늘 기도 속에 뵙고 1년에 두 번 군부대 섬김하러 가서 보면, 주어진 사명을 어깨에 짊어지고 씩씩하고 든든하게 서있는 손자 같은 장병님 한분 한분이 얼마나 사랑스럽고 대견한지 … 마음이 뜨거워져 눈시울이 붉어지곤 했답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요한복음 1:12)
형제님들!
오늘 부르시는 주님의 품속에 뛰어들어 보세요.
살아계신 주님께서는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십니다. 세상 끝날까지 항상 함께하여 주십니다. 낮아짐과 사랑으로 십자가에 죽기까지 복종하신 순종의 예수님!
스스로 종이 되어 하나님의 사랑으로 사람을 섬기시는 그 예수님을 바라보며 찬양하며 따르세요. 자신에 대해 죽고 자신을 포기하고 형제를 사랑하고 섬기며 구원하는 삶을 주님은 기뻐하십니다.

“이에 대야에 물을 담아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그 두르신 수건으로 씻기시기를 시작하여”
(요한복음 13:5)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신 주님께서 오늘도 형제님들 한분 한분의 발을 씻겨주시기를 원하십니다. 보이는 세상과 나 자신에 이끌리지 말고 이 땅에서 살아가는 목적과 근거는 예수님이십니다. 광야 길을 걸어가도 주님을 의지하고 내 주님 빛 가운데 간다면, 그 길은 천국 가는 영생의 길입니다.

반석 위의 집으로

손 흥 세 목사님

이 땅의 수많은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것들로
화려하고 아름다운 집을 짓고
채워가고자 합니다.

그러나 바람 불고 창수가 나면
그 모든 것들은 모래 위에 지은 집처럼
부서지고 무너져 내리는 것 같습니다.

보이지 않는 예수님
우리의 반석 되어 주심으로
그 위에 우리의 삶을 세워간다면
흔들림 없고 무너짐 없는
든든한 집이 세워져 가지요.

집안에 우리의 삶이 있고
집으로 시작된 모든 것은
그 집안에서 우리와 살아주시는
예수님과 함께 살아간다면
없어지고 무너질 이 땅의 삶이 아닌
영원하고 영광스런 삶이랍니다.

나의 주님께로 돌아오세요!
영광스럽고 값진 삶을 준비하시고
사랑하는 우리 병사님들을 기다리시는
사랑하는 주 예수님께로 나아오세요.
지금! 믿음으로 나아오세요!
우리 예수님 영원한 반석 되어 주시니까요.

참된 삶

김 선 순 집사님

美 해군 대위 윌리엄 쇼(한국명 : 서위렴)는 평양에 있는 선교사 서위렴 1세(William E. Shaw)의 아들로 1922년 6월 5일 평양에서 태어나 고등학교까지 다니고, 1950년 미국 하버드 대학에서 박사학위 공부 중 한국에서 전쟁이 발발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미 해군 대위로 재 입대, 한국에 돌아와 맥아더장군과 인천상륙작전을 승리로 이끌고, 우리를 위해 목숨을 바친 젊은이였습니다.

⌜‘아버님 어머님! 지금 한국 국민이 전쟁 속에서 고통당하고 있는데 이를 먼저 돕지 않고 전쟁이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평화 시에 한국에 선교사로 간다는 것은 제 양심이 도저히 허락하지 않습니다.’
(I can not be in good conscience in return to Korea as a Christian missionary in peacetime if I am not first willing to be there to help the Koreans defend their freedom in time of war).
전사하기 1주일 전, “나도 한국에서 태어났으니 한국 사람입니다. 내 조국에서 전쟁이 났는데 어떻게 마음 편하게 공부만 하겠어요. 내 조국에 평화가 온 다음에 공부를 해도 늦지 않아요.”⌟

이렇듯 이 한국 땅은 하나님 향한 믿음의 사람들에 의해 하나님이 지켜주신 나라임을 기도하면서 많이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 나라에 대한 책임과 의무를 다하며 나라 지키기에 열심히 훈련 중이신 우리의 고마우신 군인 형제님들!! 인생의 모든 해답은 하나님께 있어요.

“너는 청년의 때에 ~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라”(전도서 12장1절)

이것저것 선택할 수 있다고 할 때에 나를 만드신 하나님, 죄인 된 나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 그리고 부활하셔서 내게 삶을 주신 예수님을 붙잡으세요. 참으로 하나님 나라를 선택해 보세요.

힘들어하고 지쳐가는 이 나라 젊은이를 위해, 이 한국 땅을 위해, 하나님 향해 살아있는 양심으로 참되게 살아갈 수 있을 거예요. 그래서 이 나라가 밝아지고 젊은이들이 희망차기를 후방에서 우리도 밤낮으로 기도로 함께하겠습니다.
힘내세요! 값진 귀한 수고 고마워요.

보배 중의 보배

정 반 석 형제님

익어가는 이 가을의 세찬 바람 속에서도 저 전선에서, 그리고 저 후방에서 묵묵히 국방의 임무를 다하고 계실 전우님! 평안하신지요?

전우님! 제가 이렇게 얼굴도 알지 못하는 전우님께 편지를 쓰는 이유는, 몇 년 전만 해도 전우님처럼 군 복무에 임하였던 저로서 갓 스물, 스물한 살이라는 젊은 때에 군에서 보내어 가는 시간이 얼마나 귀한지를, 자칫하면 아무런 유익 없이 허비하기 쉬운 시간인지를 알기에, 전우님을 돕고 싶은 간절한 마음에서 이 편지를 쓰게 되었습니다.

이 간절함은 다름이 아니고요, 정말 보배 중의 보배이신 예수님을 전하고 싶음입니다.
여느 사람들처럼 그저 막연히 예수님 믿으라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간절히 예수님과 함께 동행하는 삶을 살고자 할 때, 진정 모든 문제로부터 해답이 되어 주시는 분이십니다. 전우님, 한번 곰곰이 생각해 보세요.
지난날 속에서 얼마나 우리는 주어진 환경에 휩쓸리기 쉽고, 순간마다 감정에 치우쳐서 낙심하기가 쉬웠는지요. 이러한 스스로의 답답함 때문에 여러모로 해결책을 모색해보지만, 매번 자신의 한계를 확인하는 것 외에는 남는 게 없습니다.

전우님! 스스로 해답을 찾으려 하지 마세요.
수많은 사람이 스스로 무언가 이루어보려 하고, 참된 해답을 얻어 보려 하지만, 한때 뭔가 좀 되는 것 같아 보여도 결국, 그 끝에서의 나지막한 말은 ‘덧없다’라는 힘없는 말뿐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과 동행하는 삶은 결단코 덧없는 삶이 아닙니다. 늘 기쁨과 기대가 넘치는 힘 있는 삶입니다. 환경과 여건이 좋아서 그런 것 아니고요,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을 주시는 예수님 때문입니다.

전우님!
이러한 나의 삶의 해답이 되는 예수님을 선택해 보십시오. 단지 주일에 교회 한번 가보라는 얘기가 아닙니다. 신앙생활은 주일 하루 교회에서 드리는 예배 한 번으로 그치는 생활이 결코 아닙니다.
매일, 매시간, 너무도 평범한 일과 가운데서, 개인정비시간 가운데서도, 숨 가쁜 훈련 가운데서도 늘! 예수님을 생각하며, 나 자신을 의지하지 않고 예수님만 의지하는 생활이 바로 신앙생활입니다. 이러한 생활이라면 남들처럼 그저 군에서의 이 시간이 빨리 지나가기만을 바라며 덧없이 지내는 것이 아니라, 하루하루가 정말 예수님 안에서 만족 되는 생활이 됩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한복음 15:5)

전우님!
오늘 하루의 평범한 일과 가운데 짧은 시간이라도 성경을 읽고 기도하면서, 예수님을 묵상하는 사귐의 시간을 선택해 보세요!
신앙생활은 이렇듯 예수님과 함께하는 시간을 선택하여 가는 생활입니다. 나 스스로는 해답이 없고, 아무것도 할 수 없지만, 예수님 안에 거하고 기도로서 구한다면 예수님은 우리의 간구함을 들어주시고 더불어 힘이 되어 주십니다.

그만 이 부족한 편지글을 마치려 합니다.
전우님! 꼭 예수님을 선택해 보세요.
신앙의 길은 걸어본 사람만이 알 수 있답니다. 나의 전부가 되시고 진정 주님이 되시는 예수님이 전우님께도 주님 되시기를 바랍니다.
-후방에서 전우를 위해 기도하는 전우가-

빈들판으로 오셔요

수민 교회 이 상 분 권사님

형제여,
빈들판으로 오셔요.

급한 호흡으로 달려오던
세상의 모든 소리가
슬며시 뒷걸음질하며 물러가는 곳,

땅도 풀도 나무도 쉼을 얻고
생명을 소성케 하는 빛난 하늘이슬에
영혼의 깃털이 새로운 힘을 덧입는 그 곳,

주님의 길을 좇아
은혜의 빈들판으로 오셔요.

‘더 멀리
더 높게
더 빠르게
더 크게’라고
시종 우리를 채근하며 다그치는 세상길에서,

눈빛을 세우고 키를 높이고 발걸음을 재촉하고
부지런히 겉옷에 겉옷을 더하며 몸을 키우고
확신도 믿음도 없는 선택을 반복하며 애쓰지만,

어느 틈에
우리보다 한 뼘, 두 뼘을 더한 이들이
매번 우리의 못남과 부족을 증명하지 않던가요.

세상의 힘겨룸과 다툼에 온 힘을 쏟아 붓다가
행여 이름을 높이고 성곽을 견고히 해도
실상 그 모든 것이 헛되고 헛되지 않던가요.

세상과 육신의 요구를 채우기에 분주한 중에
영혼은 시종
주리고 목마르고 헐벗지 않던가요.

형제여,
우리 속사람을 살려야지요.
생명 양식으로 먹이고 영원한 약속을 입혀야지요.

빈들판으로 오셔요.
세상과 육신의 모든 소리를 잠재우고
잠잠히 귀 기울이면 주께서 세미한 음성과 함께
따뜻한 위로의 손길을 내미시는 곳,

형제여,
홀로 갈 수 없는 이 땅 길인데
영원한 생명과 진리의 주님을 붙들어야지요.

형제여,
빈들판으로 오셔요.
진리와 인자로 함께하시는 주님께 오셔요.

최상의 복된 길

수민교회 황 경 례 집사님

형제여,
빈들판으로 오셔요.

급한 호흡으로 달려오던
세상의 모든 소리가
슬며시 뒷걸음질하며 물러가는 곳,

땅도 풀도 나무도 쉼을 얻고
생명을 소성케 하는 빛난 하늘이슬에
영혼의 깃털이 새로운 힘을 덧입는 그 곳,

주님의 길을 좇아
은혜의 빈들판으로 오셔요.

‘더 멀리
더 높게
더 빠르게
더 크게’라고
시종 우리를 채근하며 다그치는 세상길에서,

눈빛을 세우고 키를 높이고 발걸음을 재촉하고
부지런히 겉옷에 겉옷을 더하며 몸을 키우고
확신도 믿음도 없는 선택을 반복하며 애쓰지만,

어느 틈에
우리보다 한 뼘, 두 뼘을 더한 이들이
매번 우리의 못남과 부족을 증명하지 않던가요.

세상의 힘겨룸과 다툼에 온 힘을 쏟아 붓다가
행여 이름을 높이고 성곽을 견고히 해도
실상 그 모든 것이 헛되고 헛되지 않던가요.

세상과 육신의 요구를 채우기에 분주한 중에
영혼은 시종
주리고 목마르고 헐벗지 않던가요.

형제여,
우리 속사람을 살려야지요.
생명 양식으로 먹이고 영원한 약속을 입혀야지요.

빈들판으로 오셔요.
세상과 육신의 모든 소리를 잠재우고
잠잠히 귀 기울이면 주께서 세미한 음성과 함께
따뜻한 위로의 손길을 내미시는 곳,

형제여,
홀로 갈 수 없는 이 땅 길인데
영원한 생명과 진리의 주님을 붙들어야지요.

형제여,
빈들판으로 오셔요.
진리와 인자로 함께하시는 주님께 오셔요.

이기는 삶을 위하여

조 병 례 집사님

깊은 밤 전선의 별빛은 아름답게 빛나겠지요?
젊고 소중한 시간을 이 땅의 평화를 위해
헌신하시는 장병님께 감사를 전해드립니다.

오늘은 마음속에 한 소원이 있어
예수님 모시고 장병님의 삶이
승리로 빛나게 되기를 기도했습니다.

어두움이 밀려오고 거센 바람이 몰아쳐도
마음과 영혼을 지켜주시는 신실하신 분
사망의 골짜기라도 함께하시는 좋으신 목자
참된 평강을 주시기 원하시는 예수님께
또다시 온 마음으로 간구합니다.

고마우신 장병님!
십자가의 짙은 사랑 안에 거하여
가장 강할 때나 가장 약한 때에
또 부딪치는 갈급한 문제 앞에서도
부활하신 예수님을 의지한다면
이기고 또 이기시리라 확신합니다.

황량한 광야에서 선한 싸움 싸울 때
삶의 힘이 되어 주시는 예수님과
참되고 영원한 사랑이 짙어감으로
보람과 행복 있는 날들 되시길 간구드리며
여기 생생한 약속의 말씀을 보내드립니다.

"내가 네게 명한 것이 아니냐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
(여호수아 1장 9절) 아멘.

전선에 계시는 사랑하는 형제님들께!

며칠 후면 곧 시월 하순이 접어들 지금 즈음, 전선에서 이른 시간을 맞이하시고 어두운 밤 시간을 맞이하시는 여러분들께는 꽤나 차가움을 느끼게 하는 날씨인 것 같습니다.
때로는 혹한의 겨울보다는 이 늦가을의 싸늘함을 더 강하게 느낀 적이 없잖아 있었던 것 같습니다.

건강하십니까? 그리고 평안하십니까?
저 서해 5도에 계시는 우리 국군 장병님들과 휴전선 155마일을 틈새 주지 아니하고 끊임없는 관찰과 굳은 마음으로 지키시는 여러분들과 서부 전선, 중부 전선, 동부 전선 그리고 후방에 계신 여러분!

제가 서해 5도를 다 다녀본 것 못되고요, 휴전선 155마일 중에서 제 발로 디딘 곳은 심히 적은 줄 압니다.
그렇지만 우리를 참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은총 아래,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한없는 사랑으로 품으시고자 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으로 얼마나 서해 5도를 향하고 휴전선 155마일을 마음으로 더듬었는지!
서부 전선과 중부 전선과 동부 전선과 후방을 얼마나 마음으로 되새기며 지내었는가를 은밀히 보시는 하나님은 아실 것입니다.

마음으로부터 얼마나 여러분들을 생각하고 싶었는지요!
그리고 여러분들에게 은밀히 보시는 하나님의 자비로우심과 사랑이 임하시길 마음으로부터 얼마나 구하며 기대하였는지요!

늦가을로 접어들 이 즈음, 가을의 추수 때 익어가는 곡식 못지아니하게 제 마음속에 여러분들은 스쳐가는 분들이 아니라, 익어가는 분들로 마음속에 형성되어 간 것을 보아 잘 알 것 같습니다.

여러분들을 뵙지 못했고 일일이 아지 못하지만, 그래도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참으로 진정한 행복과 진정한 삶을 가질 수 있는 복되신 여러분들 되시기를 마음으로 구하여 왔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환경이 어떠한가는 여러분들에게 일일이 말할 필요가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특별히 이 나라 위해 마음 모두어 주어진 길에서 임무에 충실하고자 마음 써 가시는 여러분들께 대한 고마움과 더불어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여러분들에게 있기를 정말 원하여 봅니다.

저는 『전선에 부치는 편지』란 이 글을 통해서 조그만 저의 마음을 전하여 보고 싶습니다.

사랑하는 형제님들!
지금 여러분들은 가장 젊고, 나름대로의 용기도 있고, 또 나름대로의 그 무엇을 가진 것 같아 보이는 줄 압니다. 그러나 저는 성서 시편 62편과 시편 63편을 짤막하게나마 마음으로 되새겨가길 원합니다.

오늘 여러분들이 가지고 있는 그 어떠함을 마음으로 되새겨보면서, 비록 오늘의 삶에 참된 해답 없는 것 같아 보이지만, 해답이 있다는 것을 마음으로 더듬어보며, 여러분에게 주어진 그 길을 어려움 속에 내딛기보다는 참된 해답을 향하여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서 보는, 복되고도 영광스런 시간되시기를 기원하여 봅니다.

시편 62편에는 다윗이란 사람이 나옵니다.
시편 62편의 환경과 여건을 보아서 이것은 다윗이 이십 대에 겪었던 그러한 어려움이라고 생각하면 틀림없을 줄 압니다.
“너희가 일제히 박격하기를 언제까지 하려느냐”
그에게 다가온 어려움이 한 순간 지나가는 그런 전쟁이 아닙니다.
이십 대의 젊음이 있고 강함이 있어 보이고, 나름대로 목동으로서 광야에 익숙해 보이는 다윗이지만, 끊임없는 파도처럼 밀려오는 그 어려움 앞에 “너희가 일제히 박격하기를 언제까지 하려느냐”라고 안타까움을 호소하는 내용을 보아서, 참으로 그러한 여건임을 우리가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곳에서 이십 대의 젊은 다윗은 “나는 별 문제 아니다. 나는 자유롭다.” 이런 말을 하기보다, 겉으로 볼 때 젊음도 있고 한 때는 적군의 가장 강한 장수인 골리앗을 무너뜨린 그였고, 지금도 병든 몸이 아니라 건강한 몸임에도 불구하고 부딪치는 오늘의 현실 가운데서 자기의 어떠함을 하나님 앞에 솔직히 고백한 말이 있다면, “나는 넘어지는 담과 흔들리는 울타리 같습니다.” 라는 것이었습니다.
시편 62편에 나오는 이 내용은 다윗이 자기를 하나님 앞에서 바르게 감지한 것인 줄 압니다.

세상은 좀 더 우리를 강하라고 말하고,
세상은 좀 더 우리가 용기 있기를 원하고,
세상은 좀 더 우리가 그러한 것을 뛰어넘을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
하지만 사랑하는 여러분!
그 광야에서 익숙하고 용감했던 다윗이지만, 하나님 앞에서 자기는 “넘어지는 담과 흔들리는 울타리 같다.”라고 솔직히 고백한 것이었습니다.

어느 누구인들 아무리 우리에게 젊음이 있고 나름대로의 그 무엇을 갖추고 있다 할지라도, 오늘의 주어진 환경과 여건 속에서 하나님 앞에 진실 되게 고백할 수 있는 말은 “나는 넘어지는 담과 흔들리는 울타리 같다.”는 이 고백 이외에 다른 고백을 할 수 있을까요?
물론 때때로 사람들은 나는 그러지 않은 체 하는 모습으로 자기를 포장하여볼지 몰라도, 주어진 현실과 부딪치는 어려운 여건 속에서 느껴보는 진실은 그러할 줄 압니다.

하나님 말씀 마태복음 11장과 12장에서 우리 예수님께서 우리를 가리켜 하신 말씀은 얼마나 진실된 사실인가요!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 상한 갈대!
그렇습니다.
다윗이 젊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넘어지는 담과 흔들리는 울타리 같다.”라고 표현한 그 말이나, 은밀히 보시는 주님께서 “너는 조그만 바람에도 흔들리는 갈대이다. 너는 속이 벌써 상하여 있는 갈대이다.” 라고 우리를 알아주시는 것은 얼마나 적절한 말씀인가요!

그렇습니다.
제가 사랑하는 형제님들을 만나보아도 정말 늠름한 젊은이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나 은밀히 보시는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여러분들은 자신의 어떠함을 너무나 잘 알 것 같습니다.
우리가 계속해서 안정감 없이 바람에 나부껴야만 하나요? 바람이 없는 날이라도 상하여 있는 이 갈대 같은 영혼을 가지고 우리가 탄식하며 스스로 괴로워해야만 하나요?

시편 62편에서 다윗은 이 어려움 속에서 자기를 바라보지 아니하고, 주어진 환경의 안타까움과 참으로 한스러운 그 환경을 바라보지 아니하였습니다.
그는 자기에게 진정한 도움 될 수 있는!
해답 될 수 있는!
그에게 아무런 연관이 없는 분 같아보였지만 참으로 알고 보니 그에게 정말 도움 될 수 있는! 바로 그 주님을 향해서 어쩔 수 없는 자로! 도움을 요청하는 자로 잠잠히 주님을 향하고 있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그는 그 주님을 참으로 믿음 속에서 부르고 있었습니다.
“주님!
이러한 나이고 이러한 환경이지만
당신은 나의 반석입니다!
당신은 나의 당신은 나의 산성입니다!
당신은 나의 당신은 나의 구원입니다!”
주님을 향하여 부르짖는 다윗의 마음은 믿음이 있을 뿐만 아니라 참으로 가슴을 토하는 남김 없는 전 마음의 절규임에 틀림없을 줄 압니다.

“주님! 내 영혼이 주어진 여건과 환경을 바라보고 낙심하지 아니하고, 참으로 끈기 있는 마음과
자비를 구하는 마음으로 잠잠히 당신을 향합니다.

나에게 진정한 도움을 줄 이는 당신뿐입니다!
저는 바람이 조금만 불어도 흔들리고 요동하는 갈대입니다. 저는 흔들리는 갈대입니다! 바람이 없는 날이라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 날이라도 내 영혼 속은 상하여 있는 갈대입니다.
주님! 불쌍히 여겨 주옵시고, 나에게 해답되시는 나의 구주 나의 주님으로 다가와 주옵소서!”
이러한 마음으로 주님을 향할 그 때, 주님으로부터 임해온 큰 은총이 다윗에게 힘이 된 것 같습니다.

주어진 환경이 “너희가 일제히 박격하기를 언제까지 하려느냐” 라고 하는 이 말에 맞닿을 수 있는 여건 속에서 주님은 언제나 나의 반석, 나의 구원, 나의 산성 되어주심을 그는 고백하고 있습니다. 넘어지는 담과 흔들리는 울타리 같아서 조그만 문제만 밀려와도 흔들리고 넘어져버릴 것 같은 그였지만 “내가 크게 요동치 아니하리로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요동할 수밖에 없고 넘어질 수밖에 없는 우리가 나의 구주, 나의 주님 되신 그분 때문에 넘어지지 아니하고 흔들리지 아니하고 크게 요동하지 않는다는 것은 얼마나 값지고 귀한 큰 구원일까요!

우리는 이곳에서 우리 자신이 설 수 있는, 진정한 그 무엇을 바라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랑하는 형제님들!
오늘 제가 여러분들께 하는 이 말은 단순하게 머리로써 말하는 것 결단코 아닙니다. 저는 가슴으로 수없이 여러분들을 향하여 보았습니다.
서해 5도, 휴전선 155마일, 동부 전선, 서부 전선, 중부 전선 그리고 후방에 계신 67만의 국군 장병들을 마음으로 수없이 더듬어보고,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자비를 구해 보았습니다.
그러한 마음으로 오늘은 여러분을 향하여 권하여 봅니다. 우리에게 진정한 해답 있음을, 우리에게 진정한 참된 은총 있음을, 마음 열고 바라보기를 참으로 원합니다.

상한 갈대 같고, 흔들리는 갈대 같고, 넘어져가는 담 같고, 흔들거리는 울타리 같은 우리라고 한다면, 하나님과 진정한 관계는 맺지 못한 채 스스로 살아왔을 것입니다.
우리가 어린이, 청소년 시절을 지나서 지금은 나라에서 가장 생기 있어 보여 이 나라를 걸머진 마음으로 지키고 있기는 하지만, 영혼 속에 하나님 없이 살아온 우리로서 참된 마음을 가지고 생각해볼 때는 하나님을 향하여 죄송한 마음과 담대한 마음으로 일어설 수 없는 마음임에 사실일 것입니다.

나 스스로 바라보기에도 연약하고, 주어진 환경을 바라보기에도 그러하고, 저 하늘과 이 땅 창조하셨으며 오늘도 우리에게 햇빛 주시는 그 하나님을 참된 마음으로 바라보아도 그러한 것입니다.

참으로 상한 갈대와 흔들리는 갈대처럼 연약한 우리! 조그만 일만 있어도 꺼져버릴 것 같은 그러한 우리!
그렇습니다.
나 자신을 바라보아도 뚜렷한 해답 없고, 주어진 환경도 그러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나아가기에도 자유로운 마음이 아니 되는 연약함 속에 싸여있는 영혼일지라도, 우리에게 나의 구주 나의 주님으로 다가와 주시고자 하시는 그분께 참된 마음으로 향하여 본다면, 이상하리만치 그분은 여러분과 저의 참다운 해답이 되어주실 줄 압니다.

아무런 관계 없어보였던 그분이지만, 나의 선한 양심과 착한 마음으로 은밀히 보시는 하나님을 향하기에 그러한 마음일지라도, 진정한 마음으로 자비로우신 그분을 향하여 본다면, 그분은 여러분이 기댈 수 있고 설 수 있는, 내 영혼의 반석이 되어주십니다.
그리고 우리를 향하여 끊임없이 다가오는 그 어려움 가운데서 보호하여 주시는 우리의 산성이 되어주십니다. 그리고 여러분만이 겪는 그 어려움 속에서 홀로 낙심하며 주저앉을 수밖에 없을 때 나의 구원으로 주님은 다가와 주실 줄 압니다.
오늘 제 말이 얼마나 여러분의 마음속에 가까움으로 다가갈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사실 그렇습니다. 사실 그러합니다!

저 갈보리 십자가에 높이 매달리셨던 나사렛 예수님! 오늘 여러분과 제가 주목할 수 있고, 지금도 살아계시며 우리에게 참사랑으로 가까이 다가서 주시고자 원하시는 그분을! 다윗처럼 스스로 설 수 없는 여건 속에서 진정한 나의 인격의 반석과 구원과 산성으로 바라본다면, 사랑하는 형제님들의 영혼이 설 수 있고 크게 요동치 아니하는 이 놀라운 은총이 참으로 가까울 줄 확신합니다.

계신 그곳이 서해 5도라도, 휴전선 155마일이라도, 서부 전선이나 중부 전선이나 동부 전선 아니면 후방이라도, 계신 그곳에서! 계신 그곳에서!
오늘 여러분이 부딪치는 수많은 영혼의 어려움이 있는, 갈등이 있는 그곳에서, 진정한 구주되시고, 진정한 주님 되신 그 나사렛 예수님을 주목한다면! 이상하리만치 여러분에게 결코 무의미하고 아무런 해답도 안 되는, 대답 없는 메아리 같은 시간은 아닐 줄 압니다.

시편 62편 말씀에서 다윗은 더 나아가서 말합니다.
사랑하는 형제님들!
여러분들께서 오늘의 이 안타까운 상황과 여건 속에 건짐 받는 그러한 영혼이 되었다 할지라도, 참으로 다가 설 앞길에 대해서는 그렇습니다.
어떤 분은 나름대로의 이 세상길이 열려 있는 것 같아보일지 모르겠지만 그러나 적지 아니한 오늘의 우리 형제님들은 막연해 보이는 장래라고 안타깝게 생각할 수 있을 줄 압니다.

다윗 역시 그러합니다.
이 위기 속에서 겨우 선다할지라도 자기에게 젊음이 있고 용맹이 있고 나름대로 그 무엇을 갖추고 있는 것 같아보여도, 앞길을 헤쳐 나가기에는 너무 암담하고 어렵게 생각되는 것 같습니다.

참으로 오늘의 많은 젊은이들과 형제님들이 주어진 환경의 벽에 부딪칠 때, 일어서 주기를 원하지만 얼마나 쉽게 절망해 버리는가요!

그 가운데서 다윗은 또다시 시편 62편에 고백합니다.
“내 영혼이 잠잠히 주님만 바라봅니다.
당신은 나의 영광이시며 나의 소망입니다.”
이제 주어진 환경과 위기 가운데 건짐 받는 일 뿐만 아니라, 앞길을 헤쳐 가는 길에 있어서도 주님을 나의 영광과 나의 소망으로 바라보는 길은 얼마나 감사한지요!

우리는 사회로부터 수없이 많이 들어왔습니다. 참으로 생존 경쟁이라고요. 그러한 삶에 뛰어든다는 것은 참으로 얼마나 어려워 보이는지요!
그러나 저 하늘과 이 땅을 창조해 주셨으며 오늘도 사랑으로 우리에게 다가와 주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말씀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를 도우시는 그분의 사랑으로 인하여, 살펴봐 주시는 그분의 사랑으로 인하여, 우리의 삶은 나아갈 수 있고 오늘도 굳건하게 설 수 있음을 강하게 말씀하여 주십니다.

다윗은 그 점을 강하게 붙들었습니다.
내 앞길을 스스로 바라본다면 어두움입니다. 나에게는 저 들의 조그만 풀이라도 그 꽃을 피울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주님 당신은 “나의 소망이시며 나의 영광이십니다.”라는 마음으로 잠잠히 주님을 향하여 갈 때 그는 기쁨과 확신 속에 이렇게 외칩니다.
“내가 아지 못하는 그 어두움의 길로 걸어간다 할지라도 내가 요동하지 아니할 것이다. 내가 요동하지 아니할 것이다!”

그렇습니다.
사랑하는 형제님들이 서 있는 전선에서, 오늘도 암담해 보이고 내일도 암담해 보이는 그 여건 속에서, 스스로 자기를 가누기 어려워 한다는 것은 능히 생각할 수 있는 여건이겠습니다만, 그러나 분명한 것은 헤쳐 나아가야 할 그 환경 가운데서 내가 아니라, 나를 돌아봐 주실 구주이신 주님을 향하여 본다면!

그리고 그 누가 내 마음을 알아주랴마는 내 가는 길속에서 진정한 내 마음의 피난처 되어주시고, 내 마음의 벗이 되어 주시는 주님을 바라본다면, 여러분은 오늘 주어진 여건 속에 낙심하지 아니할 것입니다!
내가 부딪치는 문제 가운데 내 마음이 피할 곳 없고 내 마음을 토로할 곳이 없을 때 우리 마음이 참으로 그러하겠습니다만, 그러나 나사렛 예수님께서 나에게 그러한 분이 되어주심을 알아본다면, 오늘 여러분과 제가 주저앉을 이유 없고, 오늘의 막막함 속에서도 내 영혼이 방황할 이유는 결코 없을 것 같습니다!

우리가 이러한 길속에서 오늘의 삶을 헤쳐 가며 나름대로의 뜻 깊은 나의 어떠함을 유지해 보고, 어려워 보여도 우리가 진실된 마음으로 이러한 마음으로 굳혀간다면, 사랑하는 주님은 곁에서 함께 안타까워하시는 것이 아니라 힘으로 도와주시고, 나에게 넉넉한 사랑의 원천으로 함께하여 주시는 진정한 나의 벗이 되어 주십니다.

이 땅에서 주어진 환경이 아무리 어려움으로 부딪쳐온다 할지라도, 여러분과 저의 삶을 굳게 세워주십니다.
사실 다윗이 걸어갔던 길이 참으로 험난했던 것처럼 우리가 그 험난한 길을 걸어간다 할지라도, 나의 진정한 벗 되신 그 주님 때문에 우리는 주어진 일과 속에서 보람되고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이 세대 가운데서도 밝음 속에 살아가면서, 지치고 피곤한 우리의 가족들과 이웃들에게 무언가 보람 있는 참된 사랑과 참된 뜻을 펼쳐가면서, 의미 있는 내일을 향해 걸어갈 수 있음을 주목해 보는 것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요!

전선에 계신 사랑하는 형제님들!
오늘 누가 여러분을 이처럼 연약한 자로 알겠습니까! 오늘 누가 그 용맹스럽고 강한 다윗이 자기의 그 연약함을 고백하는 말을 알겠습니까!

주님이 얼마나 절실히 필요한가를 고백했던 이 시편 62편 말씀처럼, 여러분이 그러한 마음으로 주님을 향하고, 주님을 기대고, 주님을 부르고, 주님을 가까이하시기 원합니다.

그러므로 오늘 여러분 스스로 서지 아니하고, 환경의 어떠함 때문에 무너지지 아니하고, 우리와 함께하시고 참된 사랑으로 붙드시고자 하시는 주님 때문에 설 수 있는! 설 수 있는!! 사랑하는 형제님들 되시기를 정말 원하여 봅니다.

저는 짤막하나마 한마디 말은 더 잇고 싶습니다.
제가 앞부분에서 먼저 여러분에게 말씀드렸듯이 시편 62편에 이어져 나오는 시편 63편의 말씀을 잠깐 말씀드려 보려고 합니다.

시편 63편은 다윗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는 적어도 주어진 영토에서 나름대로 성공적인 삶을 살고 있는 그러한 다윗이었습니다. 주어진 환경이 자기를 일제히 박격하려 하는 그런 어려움이 있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하나님 앞에 진실된 고백을 또 토합니다.
그것은 목마름이었습니다!

환경이 아무리 좋아도, 내 손에 붙들 수 있는 것이 아무리 많을지라도, 내 영혼 깊은 곳에서의 목마름에 대한 진정한 해답은 아니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 영혼의 이 목마름을 그 무엇으로 채울 수 있을까요?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세상의 그 어떠함과 세상의 그 무엇으로는 오히려 우리 영혼을 더럽힐 뿐입니다.
우리 영혼이 맑고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자로 설 수 있는 흡족한 그런 생명수는, 그 누구도 결코 우리에게 줄 수 없습니다.
이 세상 그 어떠한 것도, 이 세상 그 누구도 우리 영혼의 깊은 목마름을 해결해 주지 못합니다.

솔로몬이 세상의 부귀영화를 그렇게 마음껏 취하여 누려본 후에 헛되고 헛되다고 고백하였으며, 바람 잡는 일이라고 고백하였으며, 심히 피곤하다고 고백하였습니다.

오늘 이 세상이 어느 때보다도 살기 좋은 것 같아보여도 영혼들은 정말 그러합니다. 목마름은 증가 되고, 그 잡는 것은 바람처럼 해답이 안 되고 피곤하여 참으로 암담함을 절감하는 것이 오늘 이 땅에 살고 있는 이들이 겪는 현실입니다.

사랑하는 형제님! 그래도 해답이 있습니다.
다윗이 시편 62편에서 자기 바라보지 아니하고, 환경 바라보지 아니하고, 그 목마름 속에서도 내 마음이 나의 구주 나의 주님 되신 주님을 경배하는 그 진정한 자세로 향했던 것처럼, 이제 우리가 참마음으로 참된 생명의 원천 되신 그분의 은혜와 사랑을 구한다면, 확신합니다!
짧지 않는 긴 날 동안 그 주님의 은혜와 긍휼로 살았던 이의 고백이라고 생각해 주십시오!!

주님은! 주님은!! 지금 서 계신 서해 5도의 그 안타까움 속에서도, 휴전선 155마일의 그 차가움 속에서도, 서부 전선, 동부 전선, 중부 전선, 후방에서도 형제님의 그 영혼 속에 있는 깊은 목마름에 대해 진정한 해답이 되어 주십니다!

마음으로부터 웃을 수 있고 마음으로부터 참으로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세상의 어떠한 것을 마시고자 하지 아니하고, 흘러넘치는 참 마음으로 우리의 이웃과 우리의 가까운 친척들에게도 무언가 참 사랑을, 참 선함을 나타낼 수 있는 이런 행복한 마음이 여러분의 영혼 속에 이루어질 수 있을 줄 확신합니다!

왜 바라보지 않는지요?
아니, 몰랐기 때문일 것입니다.
왜 기대함으로 다가서지 않았는지요?
참으로 몰랐기 때문일 것입니다.
지금!
사랑하는 형제님들은 참으로 주님을 가까이 하시기에 참 좋은 시간입니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길다 할 수 있는 그 시간 속에서 주님으로 인하여 설 수 있고, 주님으로 인하여 기뻐할 수 있고, 나의 구주 되신 나사렛 예수님으로 인하여 내 삶을 가질 수 있다는 점을 확고하게 준비해 놓으시기 원합니다.

그러면 언젠가 여러분의 길이 자유로워져서 전선에 선 자가 아니고 이 땅에서 자유로운 자로 서게 될 그 때, 여러분의 삶이 애매하지 아니하고, 방황하지 아니하고, 혼란스러워하지 아니하고, 참으로 하나님 함께하시는 은혜와 영광 속에서의 값진 길이 있을 줄 확신합니다.

차가워져 오는 날씨 속에서 주어진 임무는 결코 가볍지 않은데 내 연약함은 그 누구도 몰라주고, 내 영혼의 목마름을 그 누구도 몰라주겠지만, 은밀히 보시는 주님은 아십니다!
여러분의 영혼의 어떠함을!
여러분의 영혼의 어떠함을!!
그래서 일찍이 상한 갈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도 주님은 여러분과 저의 영혼을 견고하고 강한 자로, 참으로 흡족한 자로 그리고 나라의 부르심에만 적합할 뿐만 아니라, 오늘 우리가 나아갈 길에서도 이웃에게 유익이 되는 자로 붙들어 주시고자 하십니다. 의미 있는 생활이 우리 주님으로 인하여 여러분에게 다가올 줄 압니다.

주어진 이 귀중한 시간!
삶의 이 귀중한 문제를 해결하여 보는!
확신하여 보는!
값진 시간되시기를 원합니다!

차가워져 오는 날씨 속에서도 건강 유의하시고요. 온 마음으로 여러분을 향하여 있던 제가 그냥 단순한 머리로 더듬어 보는 생각이 아니라, 짧지 않는 길속에서 그분의 사랑을 받아왔고 그분의 사랑 속에 오늘도 서 있으면서, 확신 있는 마음으로 여러분에게 권하여 드리는 이 길이 여러분에게 큰 축복 되시기를 원하여 봅니다.
평안하십시요!
그리고 차가운 날씨 속에서도 강건하십시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