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을 바라보세요 > 조그만 빈들판

우리들의 소식

조그만 빈들판


본문

전선에 부치는 편지

2014-10-03 / 66 회차

전선에 부치는 편지



예수님을 바라보세요

취적리교회 배 명 자 집사님

마음의 고개를 들어
예수님을 바라보세요.

당신의 마음에
그 누구도
씻어주지 못할 것 같은
상처와 아픔들
깊숙이 자리 잡고 있어
쉽게 아물 것 같지 않아 보여도

여러 가지 일들로
마음이 헝클어져 있어서
생각이 많을 때에도
해답 없는 길에서
방황하는 당신의 날개를 접고
예수님을 바라보세요.

당신을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께서
당신을 잊지 않고
빛으로, 해답으로
다가와 주실 것입니다.

흙먼지 이는 사막에
메마른 광야에
샘을 터트려 주시고
당신의 막혀 있는 가슴에

하늘 생수를 흘려보내 주실
예수님을 바라보세요.

당신이 머물고 있는
삶의 곳에서 일어나는
갖가지의 사연들이
당신을 피곤하고 지치게 해도
마음을 어지럽게 해도
예수님 바라보면서
마음을 추스르세요.

당신의 상한 마음을 열고
예수님을 바라보세요.
당신을 감싸 안아주시는
우리 예수님의
따뜻한 사랑의 마음을
예수님 바라보는
그곳에서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나의 힘이 되신 주님

정 반 석 형제님

수고하시는 형제님들께!
전역한 지 2년이 넘은 저이지만 아직도 국가수호의 사명을 가지고 밤낮없이 고생하시는 형제들을 생각하면 마음 한 켠이 뜨겁습니다.
한때 저도 저를 위해 기도해주시는 귀한 분들께 편지를 받았던 입장에서 이제는 군 복무 중인 형제님들을 위해 기도하며 편지를 쓰는 입장이 되니 감회가 새롭기만 합니다.
지난 22개월의 병 생활과 6개월의 짧은 간부생활을 통해서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되돌아보면 무엇보다도 주님께서 나의 힘이 되어주셨던 시간과 그러지 못했던 시간은 너무나도 분명하게 달랐던 것 같습니다.

형제님들!
이 짧은 편지로 지난날 나의 힘이 되어주셨던 주님께 대하여 간절하게 말씀 전하고 싶습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라는 요한복음 14장 27절의 이 귀한 말씀.

세상이 주는 평안은 어떠한가요?
내 육신의 만족감, 물질의 풍요, 환경의 편안함. 하지만 이 모든 것들 얼마나 순간적인가요?
이러한 것이 곧 사라진 후에는 다시금 불안과 근심만이 남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주님 주시는 평안은 나의 그 어떠함도 아니고, 주변의 그 어떠함도 아니고, 비록 어려운 환경 가운데라도 환경을 능가하는! 내 속마음의 괴로움 속에서라도 나를 능가하는! 진정한 평안입니다. 이러한 주님의 평안이 나의 평안으로 지속될 때 얼마나 힘이 되고 좋을까요?

사람들은 종종 말합니다.
몸과 마음이 힘든 일·이등병 시절, 잠시 변화되어도 상병, 병장, 그리고 제대할 때쯤이면 다시금 옛 모습 그대로 돌아온다고…
맞는 말인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주변 환경에 나 스스로는 휘둘릴 수밖에 없고요. 나 스스로는 절대 변화될 수도 없습니다. 오직 주님만이! 연약한 나를 이끌어주시는 주님만이! 우리를 변화시키는 힘이 되어주십니다.

세상의 갖가지 좋은 교훈들을 수 없이 들어보아도, 삶에 도움이 된다던 자기계발서를 수 없이 읽어보아도, 도무지 자신이 변화되지 않는다는 것은 우리가 이미 지난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는 것 같습니다.
나를 변화시킬 힘은 오직 내 안에 계신 예수님뿐이고요, 예수님 걸어가셨던 십자가의 그 길만이 유일한 방법입니다.

형제님들!
주님 꼭 붙잡으세요!
주님을 나의 힘으로 온전히 붙들어 본다면 “여호와의 사심과 네 생명으로 맹세하오니 나와 사망의 사이는 한 걸음 뿐이니라”라고 죽음의 순간도 담대하게 고백하였던 다윗처럼! 주님의 강한 군사로서 서갈 수 있을 것입니다.
남은 군 생활 내내 나의 힘이 되시는 예수님! 내 주님을 의지하며 믿음으로 굳건히 서서 기쁨의 생활 되세요!

- 2012년 4월 보병 제대 -

나의 삶의 주인 되신 주님

김 도 연 형제님

국가의 부름을 받아 사회에서의 자유와 자신의 원함을 내려놓고, 지금은 군대라는 환경 속에서 고생하고 계실 형제님들을 생각하니 저 또한 후방에서 형제님들을 위해 더욱 많이 기도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군 생활이 힘들기는 했지만, “위기는 기회”라는 말이 있듯이 저는 군 생활을 발판삼아 자신의 한계를 깨닫고, 그 가운데 예수님을 가까이 붙들 수 있었기 때문에 값진 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군 생활 동안 딱히 많은 것을 하려고 하기보다는 예수님을 나의 주님으로 모시고 살기에 중점을 두었습니다. 그래서 제게는 그 시간들이 제 인생의 가장 큰 수확이었습니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군대가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쓸모없는 시간인 것처럼 생각하고 허비하는 것을 자주 보았습니다. 그러나 저는 제 인생에서 쓴맛도 맛볼 수 있었고, 그래서 주님을 진실히 의지할 수 있었기에 군 생활이 후회스럽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제대하여 바쁜 가운데 살고 있지만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는 마태복음 11장 28~30절의 말씀처럼, 주님께 저의 삶의 운전대와 짐을 내어드리며, 부족함 많지만 값지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군 생활 때에나 지금까지 저의 삶을 돌아볼 때, 예수님을 나의 주님으로 모시고 사는 시간들을 하나님은 의미 있게 해주셨습니다.
형제님들, 주님이 섭리하신 군 생활 기간이 예수님을 나의 진정한 주인으로서 붙들 수 있는 복된 시간 되시길 바라며 이만 줄이도록 하겠습니다.

- 2012년 7월 육군 제대 -

주님께 오세요

박 성 우 형제님

세상에 살던 나는
가진 것이 많은 자였습니다.
친구, 부모님 그리고 편안한 삶
내가 못 가질 것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스물한 살에 군대에 온 나는
가진 것이 참 없는 자였습니다.
외로움, 고단함 그리고 두려움
나 혼자 힘으로 이겨 낼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이러한 외로움에 지친 나에게
친구가 되어주셨던 분이 하나님이셨고
두려워하는 영혼에
위로자 되어 주신 분이 성령님이셨고
고단한 육신의 생명수 되어 주신 분이
예수님이셨습니다.

주님은 지금 우리 곁에 계십니다.
마음의 문을 열어 그분께 다가와 보세요.
내가 지쳐 주저앉을 때도
외로워 잠 못 이룰 때도
주님께서는 늘 내 곁에 계셔
나를 돌보아 주십니다.

주님!
그 이름을 불러보세요.
그럼 우리의 삶은 어제와 같이
곤비하고 목적 없이 사는 삶이 아닌
천국의 기쁨과 소망 품고
나아가는 길이 될 것입니다.

- 2013년 5월 육군 제대 -

내 예수님은

안 종 혁 형제님

제대한 지 일 년이 다 되어갑니다.
군 장병들 위해 기도하면서
지난 군 생활이 생각났습니다.

고단한 몸이었지만
생활관 밖 경계근무가 마음 편할 때가 있었습니다.
일하고 작업할 때
몸은 힘들어도 마음은 편하다고 느꼈지요.

그러나 그것도 한순간뿐
영원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언제나 위기와 어려움은
사방에 도사리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밝게 군 생활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나의 하나님! 나의 예수님께
믿음을 두고 살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내가 느끼는 어떤 평안도
내가 기댈 것 못되었지만,
내 예수님은
영원한 내 피난처로! 내 믿음으로!
함께 해주셨습니다.

군 장병 형제님들!
힘들 때마다 순간순간
주님께 나아가 주님을 의지하므로
군 생활이 평안하기를 기도하겠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마태복음 11장 28절)

- 2013년 11월 육군 제대 -

지금…

김 창 조 형제님

무덥던 여름도 지나가고 어느덧 아침저녁으로는 차가운 냉기가 돕니다. 이상하게도 군복을 입고 군 생활했던 그 시간에는 추위가 더 춥게 느껴졌던 시간들이었던 것 같습니다. 어쩌면 그 제한된 환경과 외로움 때문은 아니었는지…

흔히 사람들은 말합니다.
“군대도 갔다 왔는데 어떤 일을 못하랴” 혹은 부정적으로 “중요한 젊음의 시간에 군대에서 시간을 허비한다.” 하지만 군 생활의 시간은 이 험난한 인생에서 좋은 준비의 시간인 것을 부정하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이 바깥세상에는 우리의 마음을 빼앗는 것이 얼마나 많았던지…
지난 시간 내 마음의 만족을 위해 무엇을 해보기도 하고 노력해보기도 하였지만, 그것들이 정말 내 마음에 만족이 되었던지?…
후에는 공허함뿐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것 한 가지 만큼은 강하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내 영혼의 참된 만족과 안식이 있는 길이 있다고요. 그 길은 ‘예수님’이십니다.
혹 그 누군가 나를 받아주지 않는다 할지라도 예수님은 나를 받아주십니다.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나의 주님으로 영접하셔요. 우리의 앞길을 주님께 맡길 수 있습니다. 주님은 맡아주시고 선한 길로 인도하십니다.
후회 없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이 땅에서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만 예수님을 믿으라고 말씀드리고 싶지는 않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사는 삶에는 우리 마음에 참된 부요와 참된 기쁨이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영원한 천국의 삶이 허락됩니다. 참된 의인의 삶이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때를 따라 부족함 없이 채워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를 죄로부터 구원하기 위해 그 아들 예수님을 보내셨습니다. 그 몸 십자가에 못 박혀 죽기까지 순종하신 그 사랑 많으신 예수님은 부활하셔서 우리와 함께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다.

지금 문 밖에 서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지금 나의 상태의 어떠함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지금 마음의 문을 열고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나의 주님으로 영접하셔요.
그리고 주님을 성실히 따라보셔요.
주님과 함께 사는 축복과 영광이 문 앞에 놓여 있습니다.

- 2007년 8월 육군 포병 제대 -

내 주님께 헌신된 자로

문 현 식 형제님

주님! 당신만을 사랑합니다!
보잘것없는 저를 위해 그 귀한 생명을
십자가에 올려놓으시고,
이 못난 저를 그 품속에 안고 놓지 않으시며,
지켜주시는 그 무한 사랑을
무엇으로 표현할 수 없어
안타깝고 죄송할 뿐입니다.

부족한 제가 오직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제 영혼과 제 생명을 주님께 드리며
“내 주님을 어찌하면 기쁘시게 할까?
내 주님을 어찌하면 사랑하며 섬겨갈까?”
매일 이런 마음으로
내 주님을 붙잡으며 살아가는 것뿐입니다.

주님!
이제는 이 나약한 영혼이 우리 주님 놓칠까 봐
눈물로 주님을 찾고, 붙잡고 있습니다!
어떠한 고난과 핍박이 나를 짓누른다 하여도,
또한 세상이 나를 미워한다 하여도,
내겐 주님 사랑이 있기에 견딜 수 있고,
기쁨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주님!
못난 저를 놓지 말아 주세요!
순간순간 제 영혼 붙들어 주시고,
주님 날개 밑에서 숨 쉬며 살아가게 해주세요.
이제는
이 한 몸, 이 생명 오직 주님께 드리옵니다!
주님의 뜻하심에 써 주시옵소서!
진심으로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주님! 나의 주님!!

- 2010년 3월 육군 특전사 제대 -

참된 행복

윤 선 교 목사님

갓난아기의 행복은 어미의 품안에 있습니다.
어미의 품이 갓난아기가 자리 잡을 거처요 마음 둘 보금자리입니다. 이 땅에서 인간이 살아가기에 가장 완벽한 곳이 에덴동산이었습니다.
아담의 불행은 외적인 환경의 문제가 아니라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떠난 것입니다.

솔로몬의 부귀와 영화는 극에 달했습니다.
인간이 가질 수 있는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에게 다 부어 주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솔로몬의 불행은 외적인 환경이 아니라 하나님을 잃어버린 것에서 그 원인을 찾아야 합니다.
세상 모든 것을 다 가졌어도 하나님을 잃어버리면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린 것입니다.
가진 것이 없어도 주님 계시면 모든 것을 다 소유한 자입니다.

마태복음 13장의 농부가 모든 것을 다 팔아서 소유하고자 했던 밭에 감추인 보화는 주님이십니다.
빌립보서 3장에서 사도 바울 선생님은 주님을 얻으려고 모든 유익하던 것조차도 배설물로 여겼습니다.

히브리서 11장의 모세도 잠시뿐인 부귀, 영화나 애굽의 모든 보화를 작게 여긴 것도 주님과의 동행이 행복인 줄 잘 알았기 때문입니다.

천국의 실상은 보석으로 꾸며진 성벽과 황금 길이 아니라 주님이십니다. 인간의 참 행복도 외적인 환경이나 이 세상의 많은 것들을 소유함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로부터 옵니다.
그러기에 세상을 마시면 마실수록 바닷물을 마심과 같이 더 갈증이 나지만, 주님을 더 가까이 하면 할수록 내 영혼의 기쁨과 자유가 있습니다.

국군 장병 여러분!
인생은 주님을 만나기까지 안식이 없습니다.
참된 평안과 안식이 주님 안에 있습니다.
이 좋은 가을날, 주님을 사랑하고 친근히 함이 참 행복인 줄 알고 주님께 마음을 정하시고, 주님을 더 가까이 하는 축복된 시간되시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 기독교 대한 감리회 수원 소망교회 -

사랑하는 병사님들께!

손 흥 세 목사님

갓난아기의 행복은 어미의 품안에 있습니다.
어미의 품이 갓난아기가 자리 잡을 거처요 마음 둘 보금자리입니다. 이 땅에서 인간이 살아가기에 가장 완벽한 곳이 에덴동산이었습니다.
아담의 불행은 외적인 환경의 문제가 아니라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떠난 것입니다.

솔로몬의 부귀와 영화는 극에 달했습니다.
인간이 가질 수 있는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에게 다 부어 주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솔로몬의 불행은 외적인 환경이 아니라 하나님을 잃어버린 것에서 그 원인을 찾아야 합니다.
세상 모든 것을 다 가졌어도 하나님을 잃어버리면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린 것입니다.
가진 것이 없어도 주님 계시면 모든 것을 다 소유한 자입니다.

마태복음 13장의 농부가 모든 것을 다 팔아서 소유하고자 했던 밭에 감추인 보화는 주님이십니다.
빌립보서 3장에서 사도 바울 선생님은 주님을 얻으려고 모든 유익하던 것조차도 배설물로 여겼습니다.

히브리서 11장의 모세도 잠시뿐인 부귀, 영화나 애굽의 모든 보화를 작게 여긴 것도 주님과의 동행이 행복인 줄 잘 알았기 때문입니다.

천국의 실상은 보석으로 꾸며진 성벽과 황금 길이 아니라 주님이십니다. 인간의 참 행복도 외적인 환경이나 이 세상의 많은 것들을 소유함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로부터 옵니다.
그러기에 세상을 마시면 마실수록 바닷물을 마심과 같이 더 갈증이 나지만, 주님을 더 가까이 하면 할수록 내 영혼의 기쁨과 자유가 있습니다.

국군 장병 여러분!
인생은 주님을 만나기까지 안식이 없습니다.
참된 평안과 안식이 주님 안에 있습니다.
이 좋은 가을날, 주님을 사랑하고 친근히 함이 참 행복인 줄 알고 주님께 마음을 정하시고, 주님을 더 가까이 하는 축복된 시간되시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 기독교 대한 감리회 수원 소망교회 -

전선에 부치는 편지

형제님!
평안하셨습니까?
그 어느 때보다도 마음의 중심을 굳게 잡기가 쉽지 않은 요즈음 형제님들의 생활로 인해서 마음고생이 적지 아니할 것 같습니다.

환경이 좀 어려워도 내 마음을 굳게 잡을 수 있는 강한 중심을 가질 수 있는 시간이라면 고난이 그렇게 힘든 고난으로 느껴지시지 않겠지만, 오늘 우리에게 부딪쳐온 여러 가지 일과들은 우리 마음을 단단하게 묶기가 정말 어렵기에 조그만 어려움도, 조그만 일과들도 우리 마음에 적지 않은 것으로 느껴지기 참 쉬운 시간인 것 같습니다.

이제 여름은 분명히 지났고, 아직 가을의 짙은 싸늘함이 우리에게 다가오지는 않았지만, 전선의 새벽과 전선의 아침은 벌써 여러분이 찬 기운을 느끼기 쉽지 않겠나 짐작됩니다.

차라리 우리 마음이 오늘의 삶의 강함 속에 굳게 섰다면, 먼 내일은 보이지 않겠고 지나간 어제 일들도 복잡하게 우리 마음을 흔들어 놓지 않을 줄 압니다.

그러나 오늘의 굳음과 강함 있는 삶으로 묶어지는 마음이 약하여진다면, 내다보이는 먼 후일도 오늘 우리 마음을 번거롭게 하고, 어제의 지나온 저 세상의 일들도 우리 마음을 마음껏 짓밟아 놓을 수 있기에, 오늘 우리는 자기의 정체성을 갖기가 무척 힘든 그러한 시간 속에 우리가 있다고 말해도 과언은 아닐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형제님들께 주어진 근무나 형제님들께 주어진 일과들이 결코 나약한 것만은 아닐진대, 그 어느 때보다도 더 무거운 마음을 느끼기 쉽다고 한다면, 오늘의 삶이 겉으로 보기에는 예전보다 그렇게 더 힘든 것이 아닐지 몰라도 마음에 겪는 고생은 정말 적지 아니할 것입니다.

형제님!
우리가 진정한 삶의 법칙을 놓아버릴 때는 참으로 갖가지 것이 힘든 것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내 영혼이 강하게 묶어질 수 있고 내 삶의 중심을 강하게 묶을 수 있는 그 무엇이 있다면, 우리의 일과들은 훨씬 가볍게 느껴지는 것 또한 엄연한 사실인 줄 압니다.

전선에 있는 여러분들을 생각하고 여러분들을 향하는 저희 마음은 아무런 관심 없이 지내온 마음이 아닙니다. 길가의 코스모스가 우리를 맞이하는 그 모습 못지아니하게, 길 가시는 여러분의 마음을 오늘도 가깝게 다가서서 따뜻하게 맞이하고 싶은 마음으로 잠시나마 여러분에게 문안의 편지를 드리고 싶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예전에 비교하면 짧은 기간이라고 말하지만, 그래도 하루가 즐거울 때는 무척 짧게 느껴지고 힘들 때는 무척 긴 날이 될 줄 압니다. 짧고 긴 것은 시간의 헤아림보다도 내 삶을 어떻게 살고 있는가가 우리의 길고 짧음을 결정하는 것이 사실임을 아는 우리에게 있어서 여러분의 군 생활은 결코, 결코 짧지 않은 시간처럼 느껴져 오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형제님!
우리가 지금 주어진 시간 속에서 더듬어 볼 수 있는 값진 귀한 것이 분명하게 있음을 기억해 보는 것은 정말 소중한 것입니다.
우리에게 내 삶의 어떠함을 헤아려 볼 수 있는 이 값진 시간을 무의미하게 놓쳐 버린다면, 우리는 먼 후일에 그러한 시간을 갖기가 더욱더 어려움을 분명하게 느낄 수 있을 줄 압니다.

그래도 지금 우리 마음을 헤아려서 굳게 생각해 본다면, 먼 장래를 잡아당겨서 지금 고민하고 사는 어리석은 삶보다는, 별로 의미 없었던 어제의 그 일들을 오늘 내 마음에 가져와서 내 마음을 산란하게 만들어 버리는 무의미한 시간보다는, 그래도 나의 나됨을 찾아볼 수 있는 진정한 시간을 가져 보는 것은 대단히 귀중한 일인 것 같습니다.

이 가을에 저희들은 여러분을 위하여서 계속 기도해 왔던 그러한 마음으로 또 허락된 기회가 많지 않지만 그러나 발걸음이 닿는 곳에는 여러분을 방문해 보고 싶은 마음들도 저희들에게 많이 있는 줄 압니다.

하나님의 자비로움을 구하는 기도가 없고 여러분의 그 어떠함을 위하여 간구해 보는 마음이 없었다면,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진실된 마음이 아닐 줄 압니다.

분명, 보이지 않는 여러분을 향하여 휴전선 155마일을 우리는 수없이 기도 속에 다녔으며, 서해 5도의 어려움 속에 있는 형제님들을 우리는 마음으로 수없이 찾아 만났으며, 저 동부전선과 서부전선 그리고 후방에서 오늘의 주어진 임무에 충실하고자 나름대로 애쓰시는 여러분들을 마음으로 수없이 방문하였기에, 오늘 제가 이렇게 여러분에게 글로 문안을 드리는 것이 하나님 보시기에는 부끄럽지 않은 일인 것 같습니다.

마음이 없는 일이 아니라 마음에 품었던 일!
마음 밖에 있는 일이 아니라 마음 안에 있는 일로서, 비록 여러분의 얼굴을 뵙지는 못했지만, 마음으로 하나님의 자비로움 가운데서 여러분에게 의미 있고 축복된 값진 시간 되기를 구하여 온 마음으로, 잠시나마 여러분에게 마음을 전하여 보려고 합니다.

우리에게 지나간 청소년의 시간을 다시금 돌이킬 수가 없습니다. 그 청소년의 시간이 의미 있고 정말 보람 있었다고, 진정한 의미에서 붙들 수 있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못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제 돌이킬 수 없는 청소년의 시간은 지나갔겠지만, 여러분과 제가 지금 만나고 있는 시간도 엄청나게 소중하고 의미 있는 시간인 줄 압니다.

사실 조용히 하나님 앞에서 기도하며 여러분의 삶에 하나님의 자비로움과 은혜로움이 임하여 오기를 구하여 왔던 저희들로 볼 때, 여러분의 시간은 정말 값지고 소중한 시간이라 말할 수 있겠습니다.

튼튼한 그리고 놀라운 건물을 볼 때 그 건물 지하에 숨어 있는 기초에 관한 것이 무의미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비록 보이지 않지만, 비록 사람들의 안목에 드러나지는 않지만, 그 기초가 위에 드러난 그 건물의 어떠함을 붙드는 것처럼, 지금 형제님들은 낯선 곳에서 여러분의 기호에 맞지 않는 주어진 이러저러한 근무를 하며 가볍지 않은 단단한 마음으로 자신을 채찍질해야만 감당할 수 있는 길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그러한 오늘의 삶을 살아가는 그 속에서 진정한 기초를 준비하여 보는 값진 시간임을 생각하여 본다면, 먼 후일에 정말 후회하지 않는 그러한 것을 가질 수 있는 시간도 될 수 있을 줄 압니다.

저는 오늘 이 지면을 통해서 여러분에게 짤막한 내용을 전하여 보려고 합니다.
이 땅에 사는 사람은 그 누구이든 간에 적어도 두 가지는 분명히 가져야 살아볼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는 나름대로 나에게 주어진 근무지가 있어야 할 것이며 또 하나는 나름대로 나의 삶을 운영할 수 있는 나의 거처가 있어야 된다고 할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은 그 누구이든지 가져야 할 중요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꾸려야 할 나의 근무, 내가 오늘 나의 삶을 운영하기 위해서 잠깐 쉬고 안식을 취하는 나의 거처.
이 둘은 정말 소중합니다만 그러나 이 두 가지에 집착했던 사람치고 이 두 가지를 유용하고 값지게 꾸려간 사람을 찾기는 그렇게 쉽지 못합니다.

그 누구인들 이 두 가지에 집착하지 않았겠습니까만, 인생을 살고 난 이후에는 별로 보람을 느끼지 못한 채 삶을 매듭짓고야 마는 것이 이 땅을 걸어가는 대부분 사람들의 삶입니다.

저는 우리의 근무를 그리고 우리가 사는 삶의 거점을 가볍게 생각하자는 뜻은 추호도 아닙니다.
어쩌면 이 두 가지 삶을 더욱더 보람 있고 가치 있는 삶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준비해야 할 두 가지는 분명히 있는 것 같습니다.

오늘 사랑하는 형제님들은 병영생활이란 곳에서 하나의 거처를 분명하게 가지고 있고, 또 병영생활이란 곳에서 오늘 나라를 지키는 결코 가볍지 않은 엄청난 근무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오늘 여러분의 삶을 흡족한 마음으로 살고 있나요? 오늘 여러분이 짊어지고 있는 군 생활에 긍지와 보람을 느끼고 있나요?

모르긴 하지만 그런 마음 갖기가 쉽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우리가 사회에 나와서 내가 바라는 거처를 가지고 내가 원하고 나의 기호에 맞는 근무지를 가져서 나름대로 나의 삶을 꽃 피워보겠다 하였지만, 그 이면에는 결코 그렇게 되지 못하는 것이 이 땅을 걸어갔던 사람들이 가졌던 삶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호화로운 집, 모두가 우러러 바라보는 근무지.
그러나 그 이면에는 허전함과 채워지지 않는 안타까움 때문에 그러한 허구로 인하여 결국에는 이것이 진정한 나의 나됨을 붙들어주지 못했노라고 스스로 안타까워하는 것 틀림없는 사실인 줄 압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청소년 시기를 지나왔습니다.
그러나 그 청소년 시기가 보람 있었고 의미 있었고 가치 있게 보냈노라고 생각하실 분은 지금 그렇게 많지 못할 것 같습니다.
나름대로 재미있는 일과도 있었겠고, 나름대로 친구들과 어울려서 그 무엇을 했겠지만, 시간을 보낸 지금 헤아려 보고 계산해 볼 때 남는 것을 찾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반복되어 가는 것이 우리의 인생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삶의 귀중한 것을 분명하게 붙들 수 있고, 나의 오늘의 근무를 나의 오늘의 삶의 어떠함을 보람되고 의미를 가지고 살아갈 수 있는 그 귀중함을 갖추는 것은 참으로 필요하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성서 창세기 39장에서 열일곱 살 된, 참으로 착하고 부모님께 순종했던 요셉이란 사람이 형들의 질투와 포악함 때문에 먼 애굽으로 팔려왔으며, 그곳에서 종살이하고 또 마침내 억울하게 오해를 뒤집어쓰고 감옥생활까지 하는 그러한 모습을 보게 됩니다.

요셉은 이 종살이 속에서 자기의 삶을 가져야 하고 자기 근무를 충실하게 행하여만 했습니다.
그러한 삶을 보람 있고 만족한 삶이라고 생각할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자기를 사랑했던 아버지가 분명히 살아계시고, 자기의 집은 나름대로 얼마만큼의 재산을 가지고 있는 집안인데, 팔려온 몸으로서 자유 없이 종살이 하고 있는 요셉.

한 걸음 더 나아가 억울하게 감옥살이를 했던 시간을 생각해 보십시오!
서른 살 될 때까지 감옥생활을 했다면 그것은 한 해, 두 해, 세 해, 네 해가 아닌 결코 짧지 않은 긴 시간인 것 같습니다. 감옥이 그의 삶의 집이었고, 감옥이 그가 나름대로 근무해야 할 일과가 있는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속에 하나님께서 숨겨 놓으신 섭리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요셉을 이렇게 억울하고 억울한 길로 몰아넣도록 섭리하신 것이 먼 후일을 위한 준비였음을 우리는 분명하게 헤아려 볼 수 있습니다.
그는 나중에 그 엄청난 나라인 애굽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그의 생활은 엄청난 삶을 누릴 수 있었으며, 그가 하는 근무는 총리란 엄청난 직책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이 땅의 많은 분들이 더 높은 고위층에 오르고자 할 그때 그들이 지나온 삶을 검증하는 과정에서 스스로 그 위치를 포기해 버리는 모습을 여러분은 수없이 보아왔을 것 같습니다.

사실 그것은 우리가 아는 대로 그러한 위치 속에서 삶을 꾸려가고 나에게 주어진 권한을 활용하게 될 때, 우리는 얼마든지 진정한 자기를 빼앗겨 버리는 삶을 살아갈 수 있음을 긴 역사가 우리에게 너무 잘 보여 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그 억울한 종살이와 억울한 감옥살이 속에서 자기의 삶을 꾸릴 수 있는 거처를 찾아야 했고, 자기가 근무하는 그 업무를 진행하는 일을 해야 했습니다만, 그는 그 속에서 다른 사람이 보지 못하는 진정 그의 삶의 참된 근거로서
엄청나게 귀중한 것을 발견한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요셉에게 그 시간을 허락하신 것은 바로 이러한 것을 찾고 발견하라고 섭리하신 것이었습니다.

요셉이 종살이가 마음에 들었겠습니까?
물론 그렇지 못했을 것 같습니다.
요셉이 감옥살이가 마음에 들었겠습니까?

그리고 그 감옥에서 갇혀있는 사람을 돌아보는 특별한 직무가 주어졌다 해도 그 마음이 좋았겠습니까? 그렇지 못한 것 같습니다.

창세기 40장 말씀을 보면 그가 감옥에서 출소하는 술 맡은 관원에게 “나는 이곳에 들어올 만한 일을 한 사람은 아닙니다. 당신이 복직하게 되거든 나를 생각해 주십시오.”라고 한 말을 보아서 요셉은 그 생활에 흡족해 하거나 만족할 수 없었습니다.
아니, 그 누구인들 감옥생활 그리고 그 감옥에서 안에서 돌아보는 업무를 하면서 그러한 거처와 그러한 근무를 흡족하게 생각할 사람, 그 누가 있겠습니까?

우리는 이곳에서 하나님께서 뜻하시는 진정한 것을 가져야, 먼 후일에 총리라는 그 영광스러운 직위와 영광스러운 삶 가운데서도 내 영혼이 부패하지 아니하고, 내 영혼이 타락하지 아니하고, 내 영혼이 맑고, 내 영혼이 경건 되고, 내 영혼이 하나님 보시기에 거리낌이 없고, 그 주어진 위치에서 이웃에게 그리고 주어진 분들에게 유익을 끼치고, 많은 이들에게 기쁨을 드리는 그런 놀라운 삶이 가능함을 분명히 일깨워 주시는 줄 압니다.

이것은 우리가 가볍게 생각할 문제가 아닙니다! 정말 소중한 것입니다!
엄청나게 소중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님!
여러분의 지금 시간이 그러한 것을 발견해 볼 수 있는 최상의 시간이라 생각되지 않습니까?

우리가 여러분 곁에 사는 이는 아니라도 여러분의 생애 가운데서 그 어느 때보다도 진정한 나의 나됨을 찾고, 진정한 나의 삶을 찾고, 진정한 내 삶의 보람을 찾을 수 있는 시간이 바로 여러분의 지금 시간인 것처럼 느껴져 옵니다.
우리에게는 참으로 그렇게 여겨집니다!
사실 너무 중요한 시간인 것 같습니다.
이 시간을 놓친다면 그렇습니다.

요셉에게는 열 명의 형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세월 지나고 난 먼 후일에, 짧지 않은 시간을 보내고 그들을 만나보았을 때 그들의 삶은 하나도 변화된 것이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이와 같은 귀중하고도 진정한 내 삶의 근거와 진정한 내 삶의 임무를 그들은 발견치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여전히 엉클어지고, 여전히 어둡고, 여전히 침울하고, 여전히 혼란스러운 영혼을 가진 그러한 생활밖에 없었습니다.

여러분!
열 명 중 하나 아닙니다.
열 명 중의 열 명이었습니다.
그리고 분명한 것은 그때의 사회가 오늘보다 훨씬 나은 사회라도 그들의 영혼이 그러함은릏어쩔 수 없었습니다.

오늘은 어떠합니까?
오늘은 정말 어떠합니까?
우리가 오늘의 삶 가운데서 조금만 벗어나서 발을 디뎌놓는다면 그것은 혼란입니다. 그것은 어지러움입니다. 그것은 삶의 어떠함을 보여 주는 것이 결단코 아닙니다.

우리가 창세기 18장과 19장을 잠깐 비교해 본다면 그렇게 둘 사이가 멀지 않습니다.
어느 정도 거리가 있는 것 틀림없는 사실이겠지만, 창세기 19장의 그 동네에서 일어난 일을 멀리서 그 흔적을 볼 수 있을 만큼 그렇게 먼 거리가 아닙니다.

우리가 분명하게 아는 것은 창세기 18장에서 아브라함의 집은 적지 않은 사람이 살고 있었습니다. 짐작해서 한 이천여 명이라고 생각하면 크게 착오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거기에 있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다 삶의 중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굉장한 일과 아닙니다.
그 시대에 그냥 주어진 각자의 이웃들과 비슷한 일과들을 하는 그들이었지만, 그들의 인격과 그들의 생활 속에 풍기는 것은 분명 주변에서 찾아볼 수 없는 맑음과 싱싱함이 있습니다.

그들은 삶을 의욕 있게 꾸려가고 있습니다.
들판에서 목축해도 저 들판에서 밭을 갈아도 집에서 음식을 장만해도 이런저런 일을 관리해도 분명하게 그들의 삶은 달랐습니다.

그러나 조금 멀리 있는 창세기 19장의 동네를 보십시오!
우리가 그 동네를 “소돔과 고모라”라는 이름으로 불려 왔음을 잘 압니다. 그러나 그 동네 사람들 중에는 인격이 괜찮아 보이는 사람이 보이지 않습니다. 얼굴이 맑아 보이고 오늘의 삶에 진정한 자기를 가지고 있는 사람 너무 적어 보입니다.
아니 거의 없습니다.

오늘 우리가 비관적이고 어렵게만 생각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나 치우쳐가는, 참으로 무너져가는 오늘의 우리 사회를 우리가 괜찮다고 말하기는 정말 그러합니다.

형제님!
여러분이 있는 곳은 너무 소중한 곳입니다.
여러분이 그곳에서 진정한 삶을 가진다면 요셉이
무너져가는 그 이웃들에게도 또 어려움 당한 그의 가족들에게도 큰 유익이 되었듯이, 여러분도 그와 같은 삶을 분명히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나아가서 여러분의 장래도 혼란스럽지 아니하고 뚜렷하고 명료할 줄 압니다. 더 나아가 여러분이 주변의 많은 이들에게 그리고 여러분의 흩어져 계신 가족들에게도 유익을 끼쳐볼 수 있는 뜻깊은 삶이 되는 것임을 마음속에 분명하게 생각해 볼 수 있는 귀한 시간 되기를 원합니다.

그것이 무엇이냐고 물어본다면 바로 요셉에게 보여 주셨던 그것입니다. 요셉은 종살이 감옥살이를 하면서 사랑 가운데서 함께 하여 주시는 주님을 자기 삶의 거처로 삼았습니다.
그리고 그가 종살이도 충실하게 하였고 감옥 속에서도 주어진 근무를 착실하게 하였던 것은, 자기가 속하여 모신 주님을 바라보며 주님께 대하여 신실하게 살고자 마음 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의 거처에 가장 중점은 주님 안이었고요, 그가 주어진 근무를 착실하게 살아가는 것도 사람 보기에가 아니었습니다. 자기 하고 싶은 대로가 아니었습니다.
오늘도 주어진 일과에서 조용하게 부르시며 지켜보시는 주님 보시기에, 하나님 보시기에 바르게 행하고자 할 때, 그는 자기의 근무지도 참으로 놀랍게 변화되는 삶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그러한 환경 가운데서 밝은 얼굴을 가진다는 것은 불가능하며, 그러한 환경 가운데서 의욕 있는 얼굴을 가진다는 것은 정말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요셉은 서른 살 되었을 때 애굽 왕이 쳐다보아도 감옥에서 나온 청년 같지 않은, 나라를 맡겨도 무언가 해 볼 것 같은 의욕과 생기가 있어 보이는 그런 밝은 얼굴을 가진 줄 압니다.

사랑하는 형제님!
우리는 지금 하나님께서 오늘 혼란스럽고 무너져 가는 그 삶을 계속 살아가라고 우리에게 시간을 연장하여 주시고, 오늘 우리의 일과들과 우리의 날들을 붙들어 주시고 계신 것은 결코 아닌 줄 압니다.

분명한 것 한 가지 있습니다.
오늘도 우리가 참된 삶으로 돌아가야 할 것입니다. 세상의 그 무엇을 가지고 세상의 그 무엇이 되어 보아도, 여러분의 영혼 속에 절대 만족 없습니다. 여러분의 영혼 속에 그럴듯해 보이는 그 무엇은 신기루처럼 여러분으로 하여금 더욱더 목마르게 하고 더욱더 혼란스럽게 할 뿐이었지 진정한 해답은 되지 못할 줄 압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이 다 경험해야 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 주변에 수많은 이들이 그 길로 가고 있기 때문에, 그들은 가진 것이 있어 보이고 무엇이 된 것처럼 보여도, 그들의 얼굴은 어둡고 그들의 삶은 이웃에게 큰 보람과 그 무엇을 남기는 삶은 아닌 것 같습니다.

일찍이 예레미야 2장 말씀처럼 하나님께서는 자유롭게 내 의지를 가지고 그 무엇을 뿌려볼 수 없는 땅으로 그의 백성들을 이끄셨습니다.
지금 형제님들이 계신 곳은 여러분의 의지와 여러분의 뜻을 가지고 여러분의 의미를 심어볼 수 있는 그러한 곳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뜻을 뿌릴 수 없는 환경 속에서 오늘의 일과를 진행해야 하는 제한된 삶인 줄 압니다.

그러나 그 속에서 하나님께서 뜻하시는 귀중한 것을 깨우쳐 본다면, 이스라엘 백성이 오늘도 광야 내일도 광야 그다음도 광야 참으로 나의 나됨을
겉의 환경 속에서 찾기 어렵고 내 뜻을 꾸려보기 어려운 그 거친 광야를 갈 때, 주님은 그들이 진정 의지할 수 있는 벗이 되어주셨습니다.
그러한 주님과 나 사이의 우정을 깊게 하였을 그때 마침내 주님은 내 가슴속에 둘도 없는, 나의 마음 전체를 사로잡는 내 사랑이 되어 주신 것을 예레미야 2장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온 세상이 우리의 목마름을 해결해 주지 못합니다.

우리 영혼은 밑 빠진 웅덩이와 같다고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여러분!
주님을 내 벗으로 삼은 이는 종살이, 감옥살이에서 요셉이 만족했듯이 여러분은 오늘 길 속에서도 진정 하나님이 우리에게 정하여 보내신 내 구주, 내 주님이신 주님 때문에 우리는 나의 벗으로 인하여 밝을 수 있고요, 나의 벗으로 인하여 만족할 수 있습니다.

나의 벗, 나의 참길 되신 그분으로 인하여서 우리가 점점 이끌려 갈 그때, 내 인생에 진정 마음을 자리 잡고 속하여 사랑하며 갈 분이 그분임을 알 때, 이제 하나님의 섭리 속에 우리 앞길이 열려 와서 나름대로 여러분이 세상의 이곳저곳에서 주어진 길이 높든 천박하든 우리가 주님 한 분 모신 이 참된 삶의 기초를 가지고 있다면, 우리에게 주어지는 고난은 고난이 아닐 것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함께라는 행복은 있을 것이며, 나의 주님 모신 자유는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겉의 자유가 아니라 안으로 주님 모신 이 자유 속에 있을 때 우리의 제약된 환경 속에서도 충실할 수 있는 참된 인격을 보여 줄 수 있으며, 오늘 내 주님 모신 이 참된 기쁨 속에서 우리의 삶을 꾸려갈 수 있을 줄 압니다.

사랑하는 형제님!
제가 형제님들을 사랑한다고 불러도 하나님 보시기에 참으로 거리낌이 없을 것 같습니다.

사랑하는 형제님!
여러분의 삶의 방향을 제시해 주시고 진정한 나의 삶을 주실 수 있는 분으로 나사렛 예수님, 갈보리 십자가에서 그리고 부활하심으로 지금도 보좌에서 우리를 기억하시고 여러분과 저를 향하시고자 하시는 그 나사렛 예수님을, 여러분이 진정 의지하고 진정 마음을 토하며 내 영혼이 함께 할 나의 벗, 나의 주님으로 영접해서 그 주님과의 삶을 강하게 단단하게 철저하게 가지기를 힘써가는 남은 병영생활이 되어 가시길 원합니다.
여러분의 인생 가운데서 “진정 내 영원한 거처, 내 영원한 벗, 내 영원한 의미를 가졌노라.”고 고백할 수 있는 자로 주어진 환경을 벗어나는 그 날이 오기를 원합니다.
마치 요셉이 감옥을 벗어난 것처럼 말입니다.

여러분 한 분 한 분들이 오늘 하루를 오늘 이 시간을 이런 마음으로 예수님을 모시고 예수님을 가까이하며, 한없는 감사와 참된 보화를 발견한 행복을 가질 수 있는 그분과의 정말 소중한 이 사귐의 시간 속에서 나를 꾸려가므로 값진 기초를 형성하여 보는 여러분 되시기를 원합니다.

여러분의 이날이 은밀히 보시는 하나님 보시기에 그리고 오늘도 여러분의 구주로 여러분의 마음을 향하여 가까이 다가서시고자 하시는 그 예수님을 향해 이 값진 의미와 시간을 가지도록 힘써보시기 바랍니다.

세상 사람이 자기의 거처와 자기의 그 무게를 통해서 삶을 값지게 만들고자 할 그때, 여러분은 그곳이 아닌 진정 내 구주 내 주님 되신 그분께 속하여 그분을 모시고 그분과 함께 오늘의 삶을 꾸려가는 이 놀라운 새로운 근거를 여러분의 진정한 그 무엇으로 삼는다면, 오늘의 병영생활도 내일의 나아간 그곳에서도, 여러분의 거처와 여러분의 주어진 근무지가 어떠하든지 개의치 아니하고, 넉넉한 마음으로 삶의 성공적인 길을 분명하게 걸어갈 수 있을 줄 압니다.

분명 여러분은 자기를 빼앗기지 아니할 것입니다. 분명 여러분은 자기를 상실하지 아니할 줄 압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진정한 나를 가진 자로, 진정한 삶의 거처를 가진 자로, 내 주님 곁에서 그와 함께 진정한 삶의 의미를 가진 자로 길 가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며 기원하고 싶습니다.

여러분!
남은 이 가을의 시간과 다가오는 차가운 시간이 예수님 때문에 참으로 따뜻하고 값진 시간 되시기를 원합니다.
감사합니다.

2014년 9월 29일

조용한 곳에서 오늘 여러분들을 마음 깊이 있게 생각하면서 소식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