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우리 다시 함께 기도해요' 안내문(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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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705회 작성일23-04-02 14:41본문
(4)에 이어서
네 번째 기도는 53만의 우리 국군장병들을 위한 기도입니다!
여러분, 그곳에서부터 참 놀라운 소식들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강하게 매인 마음이 아니면 이것도 저것도 아닌 어수선한….
6.25 사변 때 유엔군이 크게 어려움을 겪고, 우리 국군도 크게 어려움을 겪은 개마고원 지대의 장진호 전투 이야기를 우리가 헤아리다 보면 너무 어려움을 당한 여건이었습니다. 그래도 미 해병대는 강인한 마음으로 전투를 했대요. 스미스 해병대 사단장님과 더불어 참 군인다운 모습을 보여주었대요. 그런데 미 육군은 아니라고 합니다. 형편도 없었대요.
오늘 우리 국군장병들이 그래서는 안 되겠지요. 그렇습니다. 참으로 중심이 있고, 그리고 참된 삶을 가질 수 있는 참 좋은 계기가 53만의 국군장병들에게 은혜로 허락될 수 있도록! 그래서 주님을 가까이 기대해 볼 수 있는 마음 있도록! 그들의 젊음 속에 예수님이 내 구주, 내 주님이 되도록! 그들이 나아갈 험한 세상 길 속에서도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될 수 있도록! 그러면 살 만합니다.
여러분, 다른 기도도 하겠지만, 이 네 가지의 중심된 기도가 “우리 다시 함께 기도해요!”란 기도회의 역점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우선 특별한 일이 없으면 2022년 1월 12일(수)부터 1월 15일(토)까지 잡아봅니다.
저녁 7시부터 9시까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 기도를 생각하면서 주님 앞에 귀중한 것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누가복음 2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태어나셔서 성전을 지나간 적이 있습니다. 그때 ‘모세의 법대로’란 말이 나옵니다. 그것은 비둘기 두 마리나 반구 새끼 두 마리를 제사드리고자 했습니다. 예수님을 위해, 처음 난 맏아들을 위해서 말입니다. 우리는 누가복음 2장에서 조금 더 읽어보면 예수님께서 열두 살 될 때 해마다 유월절이 되면 요셉과 마리아가 예루살렘에 간 흔적이 있어요. 해마다! 그것도 규례인 줄 압니다. 그 당시 중요한 것이었겠지요?
누가복음 4장에 보면 날이 밝아 올 때, 예수님께서 맨 먼저 하신 것은 한적한 곳으로 나가시는 일이었습니다. 무엇을 하려고요? 기도하러 가신 것이지요.
누가복음 5장에 보면 사람들이 모여와서 말씀도 듣고 병도 고침 받고자 했지만, 예수님은 한적한 곳으로 물러가사 기도하셨다고 했습니다. 이처럼 기도하시는 주님께서 이 기도를 굉장히 중하게 생각하셨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아버지 하나님의 역사보다도, 뜻하시는 역사보다도, 아버지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것을 중하게 여기셨다는 뜻입니다.
마가복음 1장에는 예수님께서 새벽 미명에 한적한 곳으로 기도하러 나가신 것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 누가복음 2장에는 예수님께서 모세의 법을 좇은 것 아닙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아기였을 때니까요. 유월절에도 율법을 좇은 것 아닙니다.
누가복음 22장에는 그냥 “기도하러 가셨다”라고 기록하지 않았고 “습관을 좇아”란 말씀이 들어있습니다. 굉장히 귀중한 것 같습니다. 물론 누가복음 4장에는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규례를 좇아 회당에 들어가사”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러나 누가복음 22장의 “습관을 좇아”라는 말씀은 의미깊은 뜻입니다. 그것은 주님께서 하루 이틀 계속해서 온 전심으로 이어갔기 때문에 마지막 날 밤도 아버지 하나님께 매달려 기도하시는 그 예수님의 기도를 보게 됩니다. 그런데 그 기도가 ‘습관을 좇아’인 것입니다. 형성되었다는 뜻입니다.
사무엘은 은퇴하고 난 이후에, 사무엘상 12장에서 백성들에게 “나는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여호와 앞에 결단코 범치 아니하고”라고 했습니다. 기도가 꽉 매여 있는 모습입니다. 기도! 떠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엘리는 어떻게 했나요? 점점 멀리하더니 자기 처소에 누워 버렸답니다. 결국은 망한 것입니다.
사무엘상 15장 말씀을 보면 사무엘이 밤새도록 주님 앞에 애통하며 호소했습니다. 하나님의 소식을 알기 때문입니다. 얼마나 기도에 익숙한가요! “간밤에…” “지난밤에…”
오늘 여러분의 기도는 어떤가요?
여러분의 기도가 한때는 엘리처럼 성실한 제사장이었는데 지금은 멀어져 버렸나요?
다윗이 주님을 향해 부르짖었던 그 간절함. 시편 22편만 읽어봐도 얼마나 다윗이 간절함으로 기도했던지요! 그러나 주님께 느긋한 마음일 때 다윗의 시온산성은 무너진 것입니다.
기도 속에 스가랴 14장의 내 주님과의 만남은 있습니다. 기도가 없다면 못 만나지요. 감람산의 만남은 기도 속의 만남을 가리킨 말씀입니다. 기도 속에 주를 만난 자는 이 세상의 어떤 문제 가운데도 주님은 내 피난처 되십니다. 그리고 주님은 내 예루살렘 되십니다. 그리고 주님은 내 성전이 되십니다. 기도가 잠들어 버린다면 다 무너지는 것이지요!
어디 예수님께 관해서 “습관을 좇아”란 말이 쉽습니까?
규례를 좇아 안식일에 회당에 가니라 그런 말씀은 있을 수 있어요.
네 번째 기도는 53만의 우리 국군장병들을 위한 기도입니다!
여러분, 그곳에서부터 참 놀라운 소식들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강하게 매인 마음이 아니면 이것도 저것도 아닌 어수선한….
6.25 사변 때 유엔군이 크게 어려움을 겪고, 우리 국군도 크게 어려움을 겪은 개마고원 지대의 장진호 전투 이야기를 우리가 헤아리다 보면 너무 어려움을 당한 여건이었습니다. 그래도 미 해병대는 강인한 마음으로 전투를 했대요. 스미스 해병대 사단장님과 더불어 참 군인다운 모습을 보여주었대요. 그런데 미 육군은 아니라고 합니다. 형편도 없었대요.
오늘 우리 국군장병들이 그래서는 안 되겠지요. 그렇습니다. 참으로 중심이 있고, 그리고 참된 삶을 가질 수 있는 참 좋은 계기가 53만의 국군장병들에게 은혜로 허락될 수 있도록! 그래서 주님을 가까이 기대해 볼 수 있는 마음 있도록! 그들의 젊음 속에 예수님이 내 구주, 내 주님이 되도록! 그들이 나아갈 험한 세상 길 속에서도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될 수 있도록! 그러면 살 만합니다.
여러분, 다른 기도도 하겠지만, 이 네 가지의 중심된 기도가 “우리 다시 함께 기도해요!”란 기도회의 역점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우선 특별한 일이 없으면 2022년 1월 12일(수)부터 1월 15일(토)까지 잡아봅니다.
저녁 7시부터 9시까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 기도를 생각하면서 주님 앞에 귀중한 것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누가복음 2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태어나셔서 성전을 지나간 적이 있습니다. 그때 ‘모세의 법대로’란 말이 나옵니다. 그것은 비둘기 두 마리나 반구 새끼 두 마리를 제사드리고자 했습니다. 예수님을 위해, 처음 난 맏아들을 위해서 말입니다. 우리는 누가복음 2장에서 조금 더 읽어보면 예수님께서 열두 살 될 때 해마다 유월절이 되면 요셉과 마리아가 예루살렘에 간 흔적이 있어요. 해마다! 그것도 규례인 줄 압니다. 그 당시 중요한 것이었겠지요?
누가복음 4장에 보면 날이 밝아 올 때, 예수님께서 맨 먼저 하신 것은 한적한 곳으로 나가시는 일이었습니다. 무엇을 하려고요? 기도하러 가신 것이지요.
누가복음 5장에 보면 사람들이 모여와서 말씀도 듣고 병도 고침 받고자 했지만, 예수님은 한적한 곳으로 물러가사 기도하셨다고 했습니다. 이처럼 기도하시는 주님께서 이 기도를 굉장히 중하게 생각하셨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아버지 하나님의 역사보다도, 뜻하시는 역사보다도, 아버지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것을 중하게 여기셨다는 뜻입니다.
마가복음 1장에는 예수님께서 새벽 미명에 한적한 곳으로 기도하러 나가신 것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 누가복음 2장에는 예수님께서 모세의 법을 좇은 것 아닙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아기였을 때니까요. 유월절에도 율법을 좇은 것 아닙니다.
누가복음 22장에는 그냥 “기도하러 가셨다”라고 기록하지 않았고 “습관을 좇아”란 말씀이 들어있습니다. 굉장히 귀중한 것 같습니다. 물론 누가복음 4장에는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규례를 좇아 회당에 들어가사”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러나 누가복음 22장의 “습관을 좇아”라는 말씀은 의미깊은 뜻입니다. 그것은 주님께서 하루 이틀 계속해서 온 전심으로 이어갔기 때문에 마지막 날 밤도 아버지 하나님께 매달려 기도하시는 그 예수님의 기도를 보게 됩니다. 그런데 그 기도가 ‘습관을 좇아’인 것입니다. 형성되었다는 뜻입니다.
사무엘은 은퇴하고 난 이후에, 사무엘상 12장에서 백성들에게 “나는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여호와 앞에 결단코 범치 아니하고”라고 했습니다. 기도가 꽉 매여 있는 모습입니다. 기도! 떠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엘리는 어떻게 했나요? 점점 멀리하더니 자기 처소에 누워 버렸답니다. 결국은 망한 것입니다.
사무엘상 15장 말씀을 보면 사무엘이 밤새도록 주님 앞에 애통하며 호소했습니다. 하나님의 소식을 알기 때문입니다. 얼마나 기도에 익숙한가요! “간밤에…” “지난밤에…”
오늘 여러분의 기도는 어떤가요?
여러분의 기도가 한때는 엘리처럼 성실한 제사장이었는데 지금은 멀어져 버렸나요?
다윗이 주님을 향해 부르짖었던 그 간절함. 시편 22편만 읽어봐도 얼마나 다윗이 간절함으로 기도했던지요! 그러나 주님께 느긋한 마음일 때 다윗의 시온산성은 무너진 것입니다.
기도 속에 스가랴 14장의 내 주님과의 만남은 있습니다. 기도가 없다면 못 만나지요. 감람산의 만남은 기도 속의 만남을 가리킨 말씀입니다. 기도 속에 주를 만난 자는 이 세상의 어떤 문제 가운데도 주님은 내 피난처 되십니다. 그리고 주님은 내 예루살렘 되십니다. 그리고 주님은 내 성전이 되십니다. 기도가 잠들어 버린다면 다 무너지는 것이지요!
어디 예수님께 관해서 “습관을 좇아”란 말이 쉽습니까?
규례를 좇아 안식일에 회당에 가니라 그런 말씀은 있을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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