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우리 다시 함께 기도해요' 안내문(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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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660회 작성일23-04-02 14:38본문
(2)에 이어서
여러분! 이쯤 되면 다 끝났나요? 아니에요.
시편 91편의 세 번째 단락에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귀한 것이 있습니다.
“저가 내게 간구하리니 내가 응답하리라”
우리의 가는 길에서 이런 관계 속에 간구하는 것입니다.
확신 속에 믿음을 가지고, 담대함을 가지고 간구하는 것입니다. 기도하다 멈춰버리는 것 아닙니다. 이것 참된 기도 아닐까요?
그 문제가 무슨 문제든 관계없어요.
내가 사는 성읍. 내가 사는 나라. 좋습니다!
“저가 내게 간구하리니 내가 응답하리라 저의 환난 때에 내가 저와 함께하리라”
우리는 실질적으로 주님을 모시고 주님의 구원 속에서 우리 삶을 살아간다는 뜻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저는 첫 번째로 우리가 조국을 위한 기도를 하자고 했습니다.
저는 두 번째로 이 땅에 있는 하나님의 백성을 위한 기도도 하고 싶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위한 기도!
이사야 1장에 보면 영혼이 주님께 멍에 매인 주의 백성은 힘도 있고, 또 주님 주신 맑음도 있고, 마음도 상쾌하고, 정돈되어 있고, 생각도 병들지 않는 모습 보게 됩니다. 그리고 주님을 내 영혼이 참으로 힘입을 수 있는 양식으로 먹는 이가 오늘도 주님을 모시고 길 가는 나귀로, 주님 모시고 함께 일하는 그의 소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여기는 힘도 있고 행복도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과 함께 즐겨 순종하면서 이 땅을 살아갈 것입니다. 세상이 아무리 어둡고 죄악이 많다 하더라도 말입니다. 그리고 내 주님 모신 이 삶은 파괴되지 아니하고 허물어지지 아니하고 의의 성읍, 신실한 고을로 내 주님 모신 삶을 꾸려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사야 1장에 안타까워하시면서 차라리 성전 문을 닫았으면 좋겠다고 탄식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영혼이 이렇게 주님께 매여 있는 참된 것이 아니라는 그 말씀인 것입니다.
여러분!
진정한 교회는 마태복음 28장 16절부터 20절 사이의 말씀과 같아야 됩니다.
예수님을 만났고 주님께 순종하고 싶은 것이 열한 제자의 마음이었습니다.
그들이 주님과 함께 나아가서 하는 일은 무엇이었나요? 여러분, 이것 간결한 것 아닙니까?
“너희는 가서 제자를 삼아라!”
여러분, 여기 열한 명은 주님께 매여서 주님을 모시고 따르는 제자였습니다. 그러면 그들도 뭐가 되라는 말씀입니까? 증거하는 예수님께 매여서 예수님의 제자가 되라는 말씀이 아닐까요? 베드로의 제자, 요한의 제자 아닙니다. 절대 아닙니다. 그들도 나아가서 예수님의 제자가 되라고 권했을 것입니다.
누가복음 14장에서 주님께서는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고”라는 말씀을 하십니다.
나의 제자! 나의 제자! 우리는 사람의 제자 아닙니다. 우리가 주님의 양이듯이 주님의 제자입니다. 열한 명은 예수님께 속하여 예수님 따르는 그 길이 얼마나 복된 길인가를 너무 잘 압니다.
그들이 나아가서 무엇을 합니까?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준대요.
세례란 말은 ‘잠긴다’란 뜻입니다. 헬라어로 밥티조(βαπτιζω)라고 해서 잠긴다는 뜻입니다. 예수 믿음으로 사도행전 2장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지 않아요? 예수 믿음으로 아버지께 잠기고, 예수 믿음으로 예수님께 사로잡히고, 예수님 믿음으로 예수님의 영, 성령에 사로잡히는 것입니다.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행 2:38)
마태복음 28장은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이라 했는데 사도행전 2장은 예수의 이름으로!
여러분, 우리가 예수님께 속해야 사랑하는 아버지 하나님께 잠기는 것입니다. 예수님께 사로잡혀야 우리는 주님의 영, 성령님께 그 몸 안에서 사로잡히는 것입니다. 이것이 혼란스러워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여기에서 나아가서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하셨을 때 예수님의 제자들이 그것을 복잡하게 생각했을까요? 주님께서 어디서는 이런 말씀을 하셨고, 어디서는 저런 말씀을 하셨다고 생각했을까요?
요한복음 14장 뒷부분을 읽다 보면, 예수님 의지하고 예수님 따르고 예수님 사랑하며 예수님 모신 마음으로 살아갈 때, 보혜사 성령님께서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마태가 마태복음을 쓸 때 그 옛날 말씀을 전부 다 머릿속에 암기를 잘해서 기록한 것입니까? 아닙니다. 절대 아닙니다. 그는 주님 모시고 살고자 했고, 주님의 영은 언제나 새롭게 새롭게 그 말씀들을 생각나게 해 주셨습니다. 그가 마태복음을 기록할 때는 한 30여 년쯤 지난 때인 줄 알고 있는데요. 어느 의미에 있어서 처음 주님께 말씀을 들을 때보다도 더 생생했을 것 같습니다. 갑자기 생각나는 게 아니라 늘 주님께서 동행하시면서 그렇게 인도해 주셨다는 그 말씀입니다. 그 말의 의미입니다. 요한복음도 마찬가지예요. 그렇게 살도록 가르쳐 주라는 뜻입니다. 이것은 주님 모시고 하나님 아버지 모시고 보혜사 성령님의 인도하심 속에 사는 얼마나 단순한 생활입니까! 말씀도 다른 말씀 없어요. 늘 그 말씀이었으면 족해요.
오늘날 교회가 그렇나요? 너무 어렵지요. 죄를 못 이기지요. 세상 못 이기지요!
그러나 이렇게 살면 하나님 앞에 바르게 사는 교회가 됩니다.
여러분! 이쯤 되면 다 끝났나요? 아니에요.
시편 91편의 세 번째 단락에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귀한 것이 있습니다.
“저가 내게 간구하리니 내가 응답하리라”
우리의 가는 길에서 이런 관계 속에 간구하는 것입니다.
확신 속에 믿음을 가지고, 담대함을 가지고 간구하는 것입니다. 기도하다 멈춰버리는 것 아닙니다. 이것 참된 기도 아닐까요?
그 문제가 무슨 문제든 관계없어요.
내가 사는 성읍. 내가 사는 나라. 좋습니다!
“저가 내게 간구하리니 내가 응답하리라 저의 환난 때에 내가 저와 함께하리라”
우리는 실질적으로 주님을 모시고 주님의 구원 속에서 우리 삶을 살아간다는 뜻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저는 첫 번째로 우리가 조국을 위한 기도를 하자고 했습니다.
저는 두 번째로 이 땅에 있는 하나님의 백성을 위한 기도도 하고 싶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위한 기도!
이사야 1장에 보면 영혼이 주님께 멍에 매인 주의 백성은 힘도 있고, 또 주님 주신 맑음도 있고, 마음도 상쾌하고, 정돈되어 있고, 생각도 병들지 않는 모습 보게 됩니다. 그리고 주님을 내 영혼이 참으로 힘입을 수 있는 양식으로 먹는 이가 오늘도 주님을 모시고 길 가는 나귀로, 주님 모시고 함께 일하는 그의 소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여기는 힘도 있고 행복도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과 함께 즐겨 순종하면서 이 땅을 살아갈 것입니다. 세상이 아무리 어둡고 죄악이 많다 하더라도 말입니다. 그리고 내 주님 모신 이 삶은 파괴되지 아니하고 허물어지지 아니하고 의의 성읍, 신실한 고을로 내 주님 모신 삶을 꾸려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사야 1장에 안타까워하시면서 차라리 성전 문을 닫았으면 좋겠다고 탄식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영혼이 이렇게 주님께 매여 있는 참된 것이 아니라는 그 말씀인 것입니다.
여러분!
진정한 교회는 마태복음 28장 16절부터 20절 사이의 말씀과 같아야 됩니다.
예수님을 만났고 주님께 순종하고 싶은 것이 열한 제자의 마음이었습니다.
그들이 주님과 함께 나아가서 하는 일은 무엇이었나요? 여러분, 이것 간결한 것 아닙니까?
“너희는 가서 제자를 삼아라!”
여러분, 여기 열한 명은 주님께 매여서 주님을 모시고 따르는 제자였습니다. 그러면 그들도 뭐가 되라는 말씀입니까? 증거하는 예수님께 매여서 예수님의 제자가 되라는 말씀이 아닐까요? 베드로의 제자, 요한의 제자 아닙니다. 절대 아닙니다. 그들도 나아가서 예수님의 제자가 되라고 권했을 것입니다.
누가복음 14장에서 주님께서는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고”라는 말씀을 하십니다.
나의 제자! 나의 제자! 우리는 사람의 제자 아닙니다. 우리가 주님의 양이듯이 주님의 제자입니다. 열한 명은 예수님께 속하여 예수님 따르는 그 길이 얼마나 복된 길인가를 너무 잘 압니다.
그들이 나아가서 무엇을 합니까?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준대요.
세례란 말은 ‘잠긴다’란 뜻입니다. 헬라어로 밥티조(βαπτιζω)라고 해서 잠긴다는 뜻입니다. 예수 믿음으로 사도행전 2장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지 않아요? 예수 믿음으로 아버지께 잠기고, 예수 믿음으로 예수님께 사로잡히고, 예수님 믿음으로 예수님의 영, 성령에 사로잡히는 것입니다.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행 2:38)
마태복음 28장은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이라 했는데 사도행전 2장은 예수의 이름으로!
여러분, 우리가 예수님께 속해야 사랑하는 아버지 하나님께 잠기는 것입니다. 예수님께 사로잡혀야 우리는 주님의 영, 성령님께 그 몸 안에서 사로잡히는 것입니다. 이것이 혼란스러워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여기에서 나아가서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하셨을 때 예수님의 제자들이 그것을 복잡하게 생각했을까요? 주님께서 어디서는 이런 말씀을 하셨고, 어디서는 저런 말씀을 하셨다고 생각했을까요?
요한복음 14장 뒷부분을 읽다 보면, 예수님 의지하고 예수님 따르고 예수님 사랑하며 예수님 모신 마음으로 살아갈 때, 보혜사 성령님께서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마태가 마태복음을 쓸 때 그 옛날 말씀을 전부 다 머릿속에 암기를 잘해서 기록한 것입니까? 아닙니다. 절대 아닙니다. 그는 주님 모시고 살고자 했고, 주님의 영은 언제나 새롭게 새롭게 그 말씀들을 생각나게 해 주셨습니다. 그가 마태복음을 기록할 때는 한 30여 년쯤 지난 때인 줄 알고 있는데요. 어느 의미에 있어서 처음 주님께 말씀을 들을 때보다도 더 생생했을 것 같습니다. 갑자기 생각나는 게 아니라 늘 주님께서 동행하시면서 그렇게 인도해 주셨다는 그 말씀입니다. 그 말의 의미입니다. 요한복음도 마찬가지예요. 그렇게 살도록 가르쳐 주라는 뜻입니다. 이것은 주님 모시고 하나님 아버지 모시고 보혜사 성령님의 인도하심 속에 사는 얼마나 단순한 생활입니까! 말씀도 다른 말씀 없어요. 늘 그 말씀이었으면 족해요.
오늘날 교회가 그렇나요? 너무 어렵지요. 죄를 못 이기지요. 세상 못 이기지요!
그러나 이렇게 살면 하나님 앞에 바르게 사는 교회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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